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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에 맞는 쓸데는 없는 무엇…쓰레기
미디어스 완군 기자  ssamwan@jinbo.net 
 
 
화끈하다. 이렇게 기가 막힌 사설을 써주시는데 어떻게 감흥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늘 조선일보 사설 이야기다. 제목부터 일단 수려하다. <TV가 온 나라를 불사르는 일 다시 없으려면>

한겨레, 경향과 비교해보면 조선일보 사설의 우수성을 확연히 알 수 있다. 한겨레의 오늘 사설 제목은 <식품 집단소송제 도입하라, '사교육비 폭탄'에 교육복지 축소까지?, 한반도 경제·안보에서 존재감 커지는 러시아>이고, 경향신문은 <비정규직에 대한 '비정한 침묵', 통일장관의 10·4 행사 불참 궁색하다, 금융 불안에도 부동산에만 매달리는 정부>이다. 어떤가? 부르짖음의 차이가 느껴지시는가.

그래서 준비했다. 배우고 또 배우면 즐겁다고 아니했던가. 할 말은 한다는 1등 신문 조선일보를 배워보자.

▲ 9월 30일자 조선일보 35면 사설

 
 
1. 제목 짓기 : 강태공의 심정으로 낚아야 한다.

우선, 제목이 남달라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사설 제목부터 조선일보 식으로 바꿔보자. 한겨레의 사설 제목은 너무 점잖다. 오늘 사설의 경우, <'멜라민이 위장을 불사르는 일 다시 없으려면',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의 성적표가 염장을 불사르는 일 다시 없으려면, 러시아가 한반도를 다시 불사르는 일 없으려면>으로 바꾸면 한결 역동적이다. 심장이 콩닥콩닥 부르르 떨려온다.

경향신문 역시 경향성과 호소는 있되 임팩트가 없다. 경향신문의 사설은 <비정규직이 온 나라를 불사르는 일 다시 없으려면, 통일장관 때문에 서울이 불바다 되는 일 다시 없으려면, 부동산이 금융 불안을 불사르는 일 다시 없으려면>으로 바꾸면 '포스'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가? 미디어가 상품이라면, 조선일보처럼.

2. 포지셔닝 :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포지셔닝은 시장에서 어떤 상품 또는 기업이 어떻게 자리잡을 것인가를 말한다. 이 지점에서 조선일보는 압도적이다. 미디어는 사실이어야 하고, 의견이 있어야 하고, 신념을 바탕으로 한 정의로 지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 폼은 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러랴? 이상 위에 현실 있고 국내 미디어 환경은 오프로드 튜닝된 4WD 지프차로 RPM 끝까지 밟아야 사는 오지이다. 맹수가 득실거린다.

그래서 입바른 소리 다 때려 치고, 미디어는 위무(慰撫,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램)여야 한다. 조선일보가 줄창 <PD수첩>만, KBS만, 노무현만 조지는 자리를 잡은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게 1등의 비결이다. 사실, 의견, 신념, 정의 따위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독자를 늘려주지 않는다. 언제나 밥그릇 우선. 밥그릇이 채워지기 전에 밥그릇을  채워주는 이들을 향해 해 줄 일을 찾아라. 꼬리를 흔들되 주인에게만. 주인이 누군지 분명히 아는. 충정이 있어야 한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처럼 비판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마인드로는 곤란하다. 그건 의리가 아니다. 배반은 대상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조폭의 배짱이다. 미디어가  상품이라면, 조선일보처럼.

3. CONTENTS : 소설쓰기에도 원칙은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TV가 온 나라를 불사르는 일 다시 없으려면>의 내용적 구성을 살펴보자.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전통적 문장작법의 기술인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충실한 전개이다. 기승전결은 기구에서 시상(詩想)을 일으키고, 승구에서 그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며, 전구에서는 장면과 사상을 새롭게 전환시키고, 결구는 전체를 묶어서 여운(餘韻)과 여정(餘情)이 깃들도록 끝맺는 것이다.

"공영 언론들의 위선, 편파 행위는 언론 스스로에 대한 자해 행위이자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며 국가 공동체에 대한 파괴적 선동"이라는 지극히 조갑제스러운 시대 착각을 창립의 변으로 밝힌 <공정언론시민연대>의 발표가 이번 사설의 시상이다. 이어서 승구에서 쇠고기 파동이 사리분별이 성숙한 어른들은 물론 중학교 여학생들이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게 됐다"고 외쳐대는 바람에 3조75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착란 확장의 논리로 들어선다. 그리곤 전구에 이르러 장면과 사상을 전환하여, 'PD저널리즘'을 때린다. 세계에 유례가 드문(없지 않고 드문) 형태의 해방구란다. 그러곤 결구에선 탄핵방송 심의의 추억을 들먹이며 여운을 남긴다.

어떤가? 한 편의 잘 짜여진 각본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 된다. 우리 편 잊지 않고 챙겨주고, 기쁨 주고 사랑받는 완벽한 글쓰기의 모범이다. 미디어가 상품이라면, 조선일보처럼.

4. timing : 때가 없을 수는 없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timing)있고, 기사에도 맥락이 있어야 한다. KBS 사장은 바뀌고, MBC 사장은 사과하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 추진되는 등 방송 전체의 땡박 영토화가 순조로운 상황에서 왜 또 조선일보는 <TV가 온 나라를 불사르는 일 다시 없으려면>이라는 철지난 래퍼토리를 사설에 올린 것일까? 궁금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이성적 작동 원리를 갖고 있는 언론 집단이라면 그렇게 하진 않는다. 조선일보의 행태는 흡사 모두가 집에 가고 싶어 눈치만 보고 있을 때, '1시간 더'를 외치는 부장님의 참을 수 없는 난폭함과 같다. 거기서 갈린다. 조선일보와 다른 것 들이.

최고의 장사는 사고자 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팔고 싶은 것만 파는 것이다. 대박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최강자 조선일보는 언제나 마케팅의 역발상을 실천한다. 타이밍을 기다리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 시간을 창조해낸다. 흘러간 옛 노래를 스타일만 살짝 바꿔 리메이크하고, 다 허물어져가는 이슈도 도배를 새로 하여 리모델링 프리미엄까지 붙여 팔아 먹는다. 조선일보에게 타이밍이란 없다. 팩트 혹은 미디어 이벤트가 있어야 기사가 나오는 구조와는 질적으로 안녕해 버렸다. 필요하면 쓴다. 때를 기다리는 것은 나약한 자들의 자세이다. 때를 만든다. 미디어가 상품이라면, 조선일보처럼.

조선일보의 사설은 차원이 넓은 지적 행동(분노, 짜증, 혐오, 민주주의, 폐간, 상념, 덧없음 등)과 격렬한 신체적 운동(실소, 부르르 떨림, 책상 강타, 컴퓨터 전원 끄기, 담배 피기 등)을 야기한다. 이렇게 복합적인 만족을 주는 조선일보를 단순히 언론이라고 부르는 건 무엇보다도 조선일보에게 실례가 아닐까 싶다. 그럼, 뭐가 좋을까…. 여러 군데 활용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막상 용도에 맞는 쓸데는 없는 무엇….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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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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