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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죄책감과 삶을 사랑하는 외로움의 어울림 
 
파주, 라는 도시가 지도에서 성큼 걸어 나와 내 삶으로 들어오게 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치 지도 저 끝에 존재하는, 그래서 평생 가 볼일 없는 곳처럼. 가끔씩 군대 갔다온 사람들의 지루한 군대이야기 속에 ‘화천’이나 ‘양구’처럼 등장했을 뿐이다. 임진강, 통일전망대, 헤이리는 익숙해도 파주. 파주를 발음할 때는 왠지 어딘지 모르는 어색함이 밀려들었다. 어쩌다가 덜컥 취직한 직장이 파주에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면, 파주는 오래도록 내 의식의 지도 저 가장자리에 위치하게 되었을 것이다.

안개에 갇힌 남자 중식

영화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자유로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실제 파주에는 안개가 많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서 조강을 이루는 곳이라서 그런지, 출근하기 위해 일기예보를 눈여겨보면 파주, 문산지역의 짙은 안개 소식을 종종 듣는다. 안개는 촘촘하게 온 몸을 감싼다. 투명한 듯,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을 만든다. 어느 덧 가야할 길과 방향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 영화 '파주' 포스터

중식(이선균)은 안개 속에 갇힌 캐릭터다. 중식을 둘러싼 안개는 죄책감과 부채의식이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배를 받아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 파주에 있는 선배의 집에 머무르게 되지만, 첫사랑이던 선배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분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로 선배의 갓난아이가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도덕성이 생명인 운동권에게, 자신의 성적 욕망 때문에 아기가 사고를 당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이후 중식은 그 상처에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한다. 잠자리에서 은수(은모의 언니)를 거부하기도 하며, 언니를 죽게 한 은모(서우)의 실수도 자신이 다 뒤집어 쓰고자 한다. 물론 ‘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은모가 느껴야할 죄책감을 은모보다 먼저 너무 크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중식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철거촌 망루 위에서 다시 돌아온 은수가 이 일을 왜 계속 하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멋있어 보여서 했고, 나중에는 내가 너무 많이 가진 것 같아서, 그리고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죄책감에서 도무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도 공부방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치고, 번듯한 직업하나 없을 때도 탈북자를 돕다가 경찰에 끌려가고, 철거투쟁이 한 참일 때는 화염병을 사용하자며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구속되겠다고 말한다. 중식의 이런 몸부림들은 사회의식의 거창한 발로라기 보다는 원죄처럼 지니고 있는 부채의식 때문이다. 중식의 행동이 기만적인 위선이나 위악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철거민들)이 신뢰에 기반해서 바라보는 중식의 모습은 중식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망루처럼 위태로운 여자 은모

영화의 시작과 끝이 ‘파주로 돌아오는 은모와 다시 떠나는 은모’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사실상 은모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삶에서 튕겨져 나와 파주에 정착하게 되는 중식과는 달리, 은모는 파주에 삶을 두고 자랐지만 끊임없이 그곳에서 탈출하려 한다.

은모는 솔직한 여자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중식과 결혼한 언니를 중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을 때도, 중식을 중식의 첫사랑인 선배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리고 다시 한 번 파주를 떠나게 될 때도.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다. 죄책감이나 부채의식으로 자기의 삶을 메어두지도 않는다. 물론 중식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은모의 실수가 언니를 죽게 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안개에 뒤덮힌 파주를 다시 떠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중식이 벗어날 수 없는 안개가 은모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 영화 '파주'의 한 장면ⓒ'파주' 공식사이트


 
은모가 돌아온 파주는 재개발이 한참이었다. 은모가 중식과 함께 지내던 집도 철거촌에 자리잡고 있고, 중식은 철거민대책위 위원장이 되어 있었다. 뿌리내리려는 자들을 쫓아내는 것이 강제철거가 웅변하는 진실이다. 건설자본의 가장 추악한 모습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그들의 천박한 윤리의식이 아니라, 그들이 파괴하는 인간 본성-마을공동체에 뿌리내리려는 소박한 소망에 대해 조금의 미안함이나 부끄러움도 가지지 않는 후안무치다. 때문에 철거민들은 자기의 의지와는 다르게 가장 위태로운 존재로 내몰린다. 뿌리내리지 못한 삶은 망루처럼 위태로워진다. 은모는 돌아와서 철거민이 되기 전부터 철거민과 같은 상황이었다. 집과 가족(중식은 처음에도, 그 이후에도 은모에게 ‘가족’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은 있었지만,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은모를 차라리 혼자 떠나는 길로 내몰았다. 망루 위에서 중식을 다그치는 은모를 볼 때, 망루가 먼저 무너질 지, 은모가 먼저 무너져 다시 떠나게 될지, 조마조마 했다.

도망치고 싶어서 머무르는 사람과 혼자이기 싫어 떠나는 사람

‘파주’를 단순하게 형부와 처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생각한다면 영화를 보고나서 심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중식과 은모는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다. 중식과 은모가 형부와 처제 사이라는, 남들의 눈길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중식과 은모가 애시당초 너무나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핏 중식은 더불어 사는 사람이고 은모는 혼자서 떠도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삶을 사랑해 혼자가 되기 싫은 은모를, 안개같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사랑할 겨를이 없는 중식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결국 은모는 솔직하게 자기를 사랑했냐고 중식에게 묻는 그런 사람이고, 중식은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라며 애매하게 돌려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못하지만 솔직한 속내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중식에게 은모가 할 수 있는 말은 “나한테 할 말이 그것 밖에 없어요”인 것이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도, 은모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끝내 자기가 다 감당하려는 중식을 은모는 떠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커다란 감동이나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를 보고 극장문을 나설 때, 희미한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파주의 밤을 감싸는 실제 안개였는지, 아니면 영화가 남긴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자유로를 달리는 버스 창에 내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다. 그 모습이 문득 죄책감과 부채의식에 갇혀있는 중식 같기도 하고 삶을 너무 사랑해 외로운 은모 같기도 하다.

미디어스 이용석 객원 칼럼니스트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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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을 눈물짓게 했던, ‘Ace of ace'의 승리 
 
아버지를 따라 처음 갔던 광주 무등경기장, 기억이 맞다면 해태의 선발은 김정수였고 상대팀은 롯데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아주 기본적인 야구의 상식-4번 타자가 제일 잘 치는 타자라는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9회초 롯데의 공격이 끝난 시점의 점수는 7대2.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면, 야구의 첫인상은 ‘약간 지루한 공놀이’였을지 모른다. 아웃카운트 3개가 남아있는 상황. 상대팀 투수가 전성기의 선동열이나 오승환이 아니라도 뒤집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고 소년은 ‘타임아웃 없는 경기’의 매력을 어설프게나마 알게 되었다.

나의 프로야구는 1993년에 시작되었다. 야구의 매력에는 진작에 빠졌으나 마음을 빼앗길 선수가 없었던 것이다. 중학교에 입합했던 그 해, 그 시즌의 지배자는 시범경기와 페넌트레이스 한국시리즈를 모두 석권한 해태였고, 훗날 팬들에게 전설로 기억될 이름들(이종범, 양준혁, 이상훈, 구대성)이 앳된 얼굴을 처음 드러냈다. 당연하게도 나는 중학교 내내 조선왕조 왕의 계보보다는 해태의 라인업을 더 잘외웠고, 수학시험 점수보다는 이종범의 도루개수가 더 높기를 바랐다. 한 번은 같은 아파트에 문희수가 살고 있던 덕에 엘레버이터에서 문희수와 이강철을 만나고는 심장이 멎을 번 한 적도 있었다. 그 시절 이종범은 나와 내 친구들의 우상이었다.

▲ 이대진 ⓒKIA 타이거즈



화려하고 날렵했던 이종범에 비해 이대진은 조금 묵직했고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다. 다부지고 단단한 체격도 순박해 보이는 얼굴로 인해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싸움하나는 잘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싸움을 즐기지는 않는, 평소에는 순하면서도 속으로 단단해 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시범경기까지만 하더라도 스포츠 신문에는 ‘대형신인 양준혁 호된 신고식’, ‘이상훈, 김홍집, 노장진 신인 강속구 경쟁’ 같은 기사들은 넘쳤지 아무도 이대진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고교시절 21개의 홈런을 때렸을 정도로 강타자였지만 진흥고가 약체였던 탓에 전국에서 주목받지는 못했고, 프로입단하고 나서야 김응룡 감독의 권유로 투수로 나섰으니 주목받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대진의 첫 무대는 93년 LG와의 개막전이었다. 이순철과 이종범이 나란히 5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던 해태는 김상훈과 이병훈이 맹활약한 LG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마지막 9회 위기의 순간에서 김응룡감독은 이대진을 올렸다. 고졸신인이 1군 마운드만 서도 긴장된다고 하는데, 개막전에, 그것도 자신의 공 하나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것은 투수로 전향한지 얼마 안되는 고졸신인에게는 버거운 부담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날 해태는 5대4로 패배하고 이대진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믿고 있는 신인들을 강하게 키우는 명장의 뚝심 덕분이었을까? 이대진은 시즌 내내 신인답지 않은 강한 뚝심과 묵직한 직구를 앞세워 3.11의 방어율에 10승을 올리는 활약을 펼쳤다.

에이스 중의 에이스

요새 같으면 따놓고 신인왕 받을 성적이었겠지만, 이대진은 2점대 방어율에 14승을 기록한 박충식과 마무리로 선동열을 위협했던 김경원에게 성적에서 밀렸다. 혹은 소속팀이 약체였다면 돋보이는 기록이었겠지만 천하의 이종범도 “니가 이종범이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워낙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은 해태라서 어지간한 성적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정도였다. 게다가 93년의 해태는 10승 투수 6명을 배출한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서 최고로 손꼽히는 최강의 마운드였다. 다승왕 조계현, 구원왕 선동열, 핵잠수함 이강철, 가을까치 김정수, 원조 마당쇠 송유석 등의 선배들 앞에서 이대진의 성적은 신인으로서 준수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대진의 별명은 ‘Ace of ace'다. 조계현도 이강철도 얻지 못했던 타이거즈의 에이스, 그리고 동시대의 정민태, 정민철, 이상훈 등 에이스들과 맞대결하면서 얻은 별명, 에이스 중의 에이스가 바로 이대진이었다. 이대진의 가장 화려했던 96~97시즌은 소속팀 해태로서는 위기의 시즌이기도 했다. 해태왕조를 이끌어오던 투타의 핵심 선동열과 김성한이 떠나고, 이순철, 장채근, 조계현, 이강철 등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 20승 투수와도 안바꾸는 이종범 때문이었지만, 마운드 위에서 에이스가 무엇인지를 묵직하게 보여준 이대진이 없었다면 불가능 한 일이었다.

90년대 최고의 투수를 논하자면 분명 이대진은 꾸준함의 정민철이나 임팩트의 정민태에게 밀린다. 하지만 에이스는 단순히 기록이 좋은 투수가 아니다. 아무리 승수가 많아도 아무리 방어율이 낮아도 에이스의 칭호는 아무나 얻을 수 없다. 이겨야 할 경기는 반드시 이기는 투수. 타자들이 분발해주면 살살 던지면 실점을 하더라도 박빙의 순간에는 최고의 기량을 짜내며 과연 이 투수에게 점수를 뽑는 것이 가능할지 의심이 드는 투수가 에이스다. 상대편 투수와 타자들이 누가 나오든 한국시리즈 1차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수가 바로 이대진이었다.  그렇게 팬들과 동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97년 20승 투수 김현욱을 누르고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다.

화려했던 동기생들과 기라성같던 선배들에 가려진 채 묵묵히 제 몫을 해내던 우직한 얼굴의 투수는 이제 리그 정상급의 에이스가 되었다. 고졸출신의 어린나이를 감안한다면 앞으로 최소 10년은 한국프로야구를 호령할 것만 같았다. 막강 현대 타선을 상대로 10타자 연속삼진을 이뤄냈을 때는 모든 기대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때로 신은 가장 노력하는 자에게 가장 큰 시련을 내려준다. 이종범이 떠나버린 해태에서 그는 혼자남아 고군분투 하지만 그것이 독이 되었는지 부상으로 주저앉게 된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6년 동안 76승을 올린 투수가 나머지 24을 채워 100승 투수가 되는데 십년이 넘는 세월이 걸릴지. 야구선수치고 부상한 번 안당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수술받고 한 시즌 쉬면 예전같은 불같은 강속구를 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도, 팬들도, 아마도 이대진도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젊은 나이의 혈기왕성함 때문이었을까? 성급하게 복귀했던 2000년, 해태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고, 아직 성하지 않은 어깨로 선수생명을 불살라가며 강속구를 던진 대가는 혹독했다. 이제 다 지난일이지만, 이대진이 마운드가 아닌 곳에서 한발 짝 떨어져서 그라운드를 바라볼 여유가 조금만 있었다면 해태의 암흑기가 그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은 한국야구의 투수운영 시스템이나 재활시스템이 지금 수준정도만 되었어도 이대진의 100승은 훨씬 당겨졌을 것이다. 다 부질없는 가정이다. 하지만 그렇게 쓰러져간 에이스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주형광, 염종석, 김상엽, 김상진... 너무 일찍 피었다가 빨리 떨어졌던 꽃들. 이대진도 그들의 전철을 밟는다고 생각했다. 이대진의 자랑이었던 낙차 큰 커브처럼 정상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나긴 재활의 시간동안 나는 이대진보다 먼저 포기하고 있었다. 100승은커녕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이대진 ⓒKIA 타이거즈

이종범이 팬들을 웃게하고 열광하게 하는 선수였다면 이대진은 팬을 눈물짓게 하는 선수다. 해매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이대진의 복귀여부를 가늠하는 기사가 실렸지만 더 이상 아무 기대도 갖지 않았다. 이제 다시는 선수로 볼 수 없을 것 같던 이대진을 내치지 않는 구단이 고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대진이 타자로 전향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왔다. 고교시절 강타자로 날렸던 이대진이었지만 이미 10년 넘게 놓아버린 방망이가 신통할 리가 없었다. 역시나 연일 투수들의 강속구에 맥없이 물러나기 일쑤였다. 강속구을 잃어버린 그가 타석에서 맞이했던 다른 투수들의 강속구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8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던 그가 뽑아낸 첫 안타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극적이었다. 2002년 잠실구장, 자신의 데뷔전 상대였던 LG와의 경기에서 7회초 1사만루의 찬스에서 이대진은 대타로 등장한다. 상대투수는 한국 최고의 마무리이자 이대진의 입단동기 이상훈, 점수는 5대4로 기아가 뒤지고 있었다. 2스트라이크 2볼에서 이상훈은 바깥쪽 빠른공을 승부구로 던졌다. 공 하나 하나에 혼을 실어 던지던 이상훈, 그리고 이대진의 스윙이 호쾌하게 이어졌다. 잠시동안 시간은 멈춘 듯 했고, 관중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공은 중견수 이병규를 훌쩍 넘겼다. 헌데 왠일인지 역전의 기쁨보다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강속구가 사라진 후 오히려 '투수'가 되다

타자로서 외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대진이 내려온 곳은 마운드였으니 다시 돌아갈 곳도 마운드였다. 2004년, 2005년, 2006년 이대진은 한 시즌에 한 두 번씩은 마운드에 올랐으나 안타까움만 남기고 쓸쓸히 퇴장했다. 아무도 이대진의 재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 외롭고 고독한 재활 끝에 그는 돌아왔다. 병역거부로 구속중이던 나는 2007년 수원구치소의 차디찬 독방에서 이대진의 복귀경기를 봤다. 수감시설 안에서는 모든 방송이 녹화방송이었기 때문에 나는 징벌을 무릅쓰고 TV안테나를 조작해 이대진의 경기를 지켜봤다. 주파수를 잘 맞추지 못해 지지직거리는 화면으로 7년만의 선발승을 끝까지 지켜봤다. 100승 따위는 생각도 안했다. 다시 돌아와서 마운드에게 제몫을 하는 선발 투수로 던져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2007시즌 꼴지팀 기아에서 7승을 거두며 무너진 선발진에서 불운의 에이스 윤석민과 함께 당당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예전의 불같은 강속구는 사라졌지만, 타자들을 압도하는 포스는 없어졌지만, 마운드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눈물나게 하는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WBC에 출전했던 김민재는 언젠가 오승환의 돌직구을 언급하며 도저히 칠 수 없을 것 같지만, 전성기 이대진의 속구에는 못미친다고 했다. 잘 받아쳐도 손이 저릿저릿한 강속구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이대진은 ‘투수’가 되었다. ‘투수’의 의미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공을 던지는 사람, 투수 이대진에게 100승은 오히려 덤이다. 승패와 탈삼진 같은 성적은 이대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엔 너무 볼품없다. 그는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자체가 의미가 되는 사람이다. 기아가 올 시즌 우승하면 좋겠지만 그런 따위도 상관없다. 이대진이 마운드 위에 오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야구를 보며 눈물 흘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투수 이대진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의 프로야구는 93년 이종범과 함께 시작되었다. 내 프로야구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이대진과 함께 끝난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용석/야구애호가  m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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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김일성만세”를 광화문에서 외친다면?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mediaus@mediaus.co.kr 
 
 
시인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라는 시에서 “김일성만세/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라고 썼다. 그리고 서슬 퍼렇던 1960년대에 시인은 결국 이 시를 발표하지 못했다. 만약 이 시를 발표했었다면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이 그를 가만히 놔두었을 리가 없다. 헌법의 하위법인 국가보안법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상황을 시인은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 시가 쓰여진 1960년으로부터 49년이 지난 지금, 광화문 한복판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친다면 어떻게 될까?

① 라이트코리아와 자유북한운동연합으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을 받는다.
②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게 즉각 연행된다.
③ 검찰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법원은 이를 승인하여 구속된다.
④ 별 이상한 사람도 있네 하는 표정의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하며 봄날의 해프닝조차 되지 못한다.

고발이 아니라 리플이면 충분하다

신해철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했다. 17일 라이트코리아의 봉태홍 대표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해철을 맹비난하고 “검찰이 신씨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아 우리가 고발하게 된 것”이라며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김일성 만세”를 외친다면 라이트코리아와 자유북한운동연합으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신해철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문제의 글을 찾아봤다. 요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북한의 로켓 발사를 민족의 일원으로 축하하고, 대한민국도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신해철이 대한민국의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냥 위의 보기 ④번처럼 웃어넘기면 될 일로 밖에는 안보인다.

     

▲ 신해철닷컴 화면 캡처.


 
물론 신해철에 대한 옹호와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진중권의 지적처럼, 우익으로부터는 “북한의 핵무장을 하는데 어떻게 찬양하느냐”고 비판을 받고, 좌파로부터는 “자위권을 넘어서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를 옹호”한다고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일부 주사파나 혹은 핵무기의 보유를 염원하는 사람 중에서 북한과의 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경우 그의 견해를 지지할 수도 있다. 신해철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신해철에 대한 견해를 피력할 자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보다 현명한 대응은 그냥 한 번 웃어주고 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공적인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왔고 그 파급력이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면 그의 이야기를 공론의 장에서 비판할 필요는 있겠지만, 개인 홈페이지에 짧게 남긴 의견에 굳이 토를 달고 싶다면 리플 하나 남겨주는 것이 적당하다.

국가보안법이 물린 재갈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생각을 처벌하는 희한한 법인 국가보안법에 의존하는 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말하면 입만 아프다. 검찰은 작년 8월 사노련을 결성한 혐의로 오세철 교수외 8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개그를 발표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술마시고 대통령 욕하면 잡혀가던 막걸리 보안법의 시대에 비하면 국가보안법은 그 서슬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무의식의 영역에서 우리의 생각과 언어를 제약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의 경우 평화나 환경에 대한 외국의 서적을 여러 권 번역했는데, 그 자신이 직접 책을 쓸 수 있음에도 자신의 책은 하나도 없는 이유를 그의 지인에게 건너 들은 적이 있다. 바로 국가보안법 때문이라고.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의 처벌의 근거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짓눌렀던 국가보안법이 죽어서도 죽지 않고 우리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만세! 이명박만세!를 외칠 자유를 허하라

나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것은 자신들도 대륙간탄도탄을 만들 수 있다는 과시의 의도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동북아의 평화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북한의 로켓 발사를 옹호하는 의견이나, 더 나아가서 신해철처럼 북한의 핵을 옹호하거나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은 한반도의 평화에 굉장히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게 된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만큼이나 불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으로 신해철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언제가는 나의 입에도 혹은 신해철을 고발한 뉴라이트의 입에도 재갈이 물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쁜 거 하나도 없고 심지어 그의 의견이 불편하지만(국가보안법으로 고발당하지 않았다면 신경도 안썼을 거지만), 그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일성 만세를 외치든 이명박 만세를 외치든 누구도 그의 만세소리 때문에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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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꼴찌해도 괜찮아!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mediaus@mediaus.co.kr 
 
 
그것은 단순한 공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주먹만한 크기의 하얀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고 잡고 하는 것이 게임의 전부다. 하지만, 하지만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본 사람들은 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울어대는 소쩍새처럼, 프로야구 개막만을 기다리며 스포츠기사를 검색하는 마음을. 봄은 그렇게 야구와 함께 시작되는 것임을.

WBC가 있었다? 시범경기가 있었다.

2009년의 야구는 이미 WBC에서 시작된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애국자일 수는 있지만 야구팬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선수들은 ‘야구’를 했다. 다만 미디어는 ‘대한민국’을 중계했을 뿐이다. 그곳엔 한국의 입장으로 보면 악당역을 자처한 일본의 ‘입치료’만 있었을 뿐,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안타에 빛나는 스즈키 이치로는 없었다. 온나라가 떠들썩하고 당최 야구장마저도 불도저로 밀어버릴 것 같은 대통령마저도 입만 열면 야구 이야기였지만, 나는 조용히 아무곳에서도 중계해주지 않는 시범경기 결과를 찾아볼 뿐이었다.

그러나 시범경기는 솔직히 재미없었다. 박지성, 박주영, 이영표, 설기현이 없는 국내프로축구리그가 재미없는 것처럼 WBC에 참가하는 각 팀의 주축 선수들이 없는 시범경기는 당최 횟집에서 회는 안나오고 스끼다시만 나온 느낌이다. 스타급 선수들이 빠져있으니 시범경기를 보고 올시즌 판도를 예상하기는 더욱 난망하고, WBC 때문에 페이스를 너무 빨리 올린 대표선수들이 과연 조화롭게 소속팀에 복귀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그래서 사실 난 WBC가 국내리그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막도 하기 전에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롯데의 돌풍이 만만치 않았다. 뭐 롯데야 ‘8888577’(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롯데 팀 성적)을 써내려 갈 때도 봄에는 항상 잘했다고 하지만, 에이스와 4번타자, 포수, 유격수 등 팀의 핵심이 빠진 상황에서 11승 1패의 성적을 거둬서 안그래도 흥분과다인 롯데 팬들에게 진정제가 아닌 각성제 주사를 놓은 격이 되었다. 시범경기에서 팀으로서는 롯데가 돌풍이었다면, 선수로서는 한화의 유격수 송광민이 눈에 띄었다. 일찍부터 주목받던 삼성의 조동찬과 고교 동기인 송광민은 거의 무명으로 지내오다가 지난 시즌 어느 정도 존재감을 형성했고 올시즌 신데렐라처럼 등장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낸 것으로 보인다. 인생사 세옹지마라더니, 송광민과 조동찬의 희비 쌍곡선이 이렇게 교차할 줄이야.

     

▲ 4월 3일자 조선일보 22면.


 
그들은 아직도 성장중

WBC 흥행이 프로야구의 흥행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2006년에 경험했었다. 애국심이라는 녀석은 원래 바람과도 같은 것. WBC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피겨스케이팅으로 옮겨탔다. 국가대표 경기에서만 유독 발휘되는 그 신기한 에너지는 어쩌면 국내 프로리그들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2009 한국 프로야구가 인기 있으려면 꼭 해줘야 하는 선수들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선수들에 주목한다면 2009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WBC에서는 주춤했지만 다이내믹한 폼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야구를 하는 김광현, 데뷔 때부터 괴물이어서 그 포스를 유지만 해도 엄청난 류현진, 해마다 구종이 늘어가고 있는 완연한 성장기 어린이 윤석민, ‘기계’라는 비인간적인(?) 별명이 딱 들어맞는 김현수, 소속팀 기아의 신데렐라에서 어느덧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 한 이용규. 이들의 절대적인 매력은 이미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성장 중이라는 것이다. 마치 만화 슬램덩크를 보면서 농구 초짜인 강백호의 실력이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향상되는 것을 보고 느꼈던 뿌듯한 감동을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다. 이미 최고의 실력을 갖춘 그들이기에 갈고 닦아진 육체와 플레이에서 뿜어나오는 수준 높은 경기력은 오히려 보너스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그들은 ‘쿨’하기까지 하다. 적어도 ‘국가대표’쯤 되면 처절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채 전쟁같은 게임을 치러야 하고, 인터뷰나 게임에 임해서도 화랑 관창과도 같은 희생정신으로 무장해야 했건만, 그들은 그저 야구를 ‘즐기’려고 했다. 세계최고의 타자인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상대해보고 싶었다는 윤석민이나 자신의 우상 아오키를 뛰어넘고 싶다는 이용규 등을 볼 때면 이들은 무언가 처절함과 비장함으로 가득찬 까치 오혜성보다는 야구를 즐기는 평범한 소년인 H2의 히로가 떠오른다. 미디어가 만들어내고 정치권에서 적극 활용하는 애국심 열풍에 어느 정도 휩쓸리기도 했지만, 인격수양을 위해 야구를 하는 삼미슈퍼스타즈(박민규의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야구가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있는 선수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9 프로야구 개봉박두!

오랫동안 두산 마운드를 지켜온 랜들이 부상으로 퇴출되었다는 소식과 잠실 개막전에서 유인촌이 시구를 한다는 소식 등 몇몇 안좋은 소식들도 있지만, 이미 와버린 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시작되는 프로야구의 열기를 막을 수는 없다.

팀마다 치르는 133경기, 각 경기마다 승리와 패배와 환호와 눈물이 있을 것이다. 보다 많은 승리를 염원하기는 선수들이나 팬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지는 것보다 이기는 것이 백배는 재미있다. 하지만 팬들은 승리하는 게임에서 더 많은 기쁨을 얻지만 선수들은 패배한 게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한 번의 승리와 패배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진정 야구를 즐기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결국 나도 아무래도 이기는 경기가 재미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면 내가 응원하는 기아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세상 모든 곳이 1등만 살아남는 살벌한 곳이 되어 가고 있는데, 특히나 프로스포츠계는 경쟁의 법칙이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을 텐데, 그래도 왠지 기아가 꼴찌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성적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어디 세상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지는 곳이던가. 이종범이 나와서 병살타를 쳐도, 이대진이 나와서 역전 만루홈런을 맞아도 그들을 볼 수 있는 게 어딘가. 나이든 삼성팬들이 말년의 이만수가 젊은 투수의 강속구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어처구니없는 헛스윙을 해도 좋아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의 우상들이 저물어 가는 것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의 추억이 될 젊고 뛰어난 선수들의 성장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흐뭇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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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어른들, 그러나 전혀 다른 아이들 
이용석/전쟁없는세상활동가  webmaster@mediaus.co.kr 
 
 
아주 힘겹게 책을 읽어내려갔다.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 기술한 다른 책들도 쉽사리 읽히지는 않았지만 그것들과는 약간 다른 형태의 무언가가 가슴을 짓눌렀다. 예리한 송곳이라기 보다는 둔탁하고 육중한, 그래서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몽둥이가 지긋히 심장을 내리누르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이 책이 단순히 ‘히틀러’에 대한 책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힘겹게 읽어내려간 것보다 더 힘들게 서평을 썼다. 아마 부탁받았던 것이 아니었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련도 없이 지워버렸다. 목이 턱 막혀있었지만 한마디도 새어나올 틈도 없이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그저 글자수만 채워놓은 서평이 맘에 들긴 힘들었다. 게다가 난 솔직히 말하자면, 교육 혹은 청소년들에 대해 진보물 먹었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정도 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국가가 필요로 하지 않는 학생들

그렇게 서평을 부탁한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냥 나몰라라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일제고사와 관련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서울의 일부학교가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 운동부 학생들을 시험을 보지 않게 했다’는 기사와  ‘서울지역 3개의 특수학교가 학업성취도 평가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기사였다. 누구는 시험 안봤더니 담임선생님이 짤리는데 누구는 시험을 볼 기회조차 박탈하는 넌센스도 황당했었지만, 그보다는 <히틀러의 아이들>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히틀러의 아이들', 수전 캠벨 바톨레티 저, 손정숙 역, 지식의풍경, 2008

소년소녀들은 스스로 신체 건강하며 유전병이 없다는 것도 증명해야했다. 인종 검증을 통과한 신체 장애아들에 한해 ‘장애 및 허약자 히틀러청소년단’이라는 특별반 가입이 허용됐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부모가 아무리 충성스런 나치당원이라도 청소년단에 가입할 수 없었다. (책 34쪽)

나치가 인종주의와 우생학을 기반으로 이른바 ‘불순물’을 제거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성적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없는 아이들을 분리해 낸 것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애정을 망각하고 특정한 목적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국가 교육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나치와 이명박 정부는 놀랍게 닮아 있다.

파시즘 국가의 전쟁 수행을 위해서만이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아이들과 돈벌이의 능력과 그것의 기반이 될 학벌사회에서의 성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아이들 중 누가 더 슬플까? 나치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과 혹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더 이상 한 몫의 인간일 수 없었던 것처럼 한국에서 공부를 못하거나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아이들은 학교와 교육청에 구차한 짐일 뿐인 것인가?

히틀러의 아이들

비극적이게도 히틀러 시대의 아이들은 이러한 나치의 교육정책에 적극 동조했다. <히틀러의 아이들>은 단순히 나치에 이용당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행동한 열성적인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 관심 없다는 어른들의 불평에 대한 아이들의 반감을 히틀러는 다만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1930년대 무기력했던 독일의 기성세대들이 주지 못한 것을 히틀러는 자극했다. 모험과 탐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의 표출과 정치적 주체로서의 적극적 행동. 히틀러 청소년단(Hitler Youth)은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나치의 사상과 근대국가의 국민-국가전쟁에 언제라도 동원될 수 있는 인력-으로 갖추어야 할 몸과 마음을 습득해갔다.

물론 모두가 히틀러 청소년단에 열광한 것은 아니다. 외국 라디오 방송 청취를 금지하는 나치의 법을 어기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전단지에 인쇄해 뿌렸던 헬무트 휴베너, 백장미단의 한스 숄(그는 한때 히틀러 청소년단의 단위조직 지휘책임자이기도 했다)과 소피 숄 등의 이야기도 책에 등장하지만 그들은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소피 숄은 사형선고를 전해듣고 “우리의 행동으로 숱한 사람들이 깨어나 행동하게 된다면 내 죽음쯤은 아무것도 아니다.”(150쪽)고 말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에 더 가까운 법이다. 이미 많은 독일의 학생들은 나치의 교육이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다. 

뮌헨 대학생들은 소피의 기대와는 달리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그 대신 한스와 소피 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처형된 지 두 시간 만에 친나치 집회를 열어 정부에 충성을 표했다. (151쪽)

이명박의 아이들?

불행 중 다행일까? 히틀러에게는 괴벨스가 있었지만 이명박에게는 유인촌이 있다. 아무리 봐도 히틀러와 괴벨스 콤비보다는 이명박과 유인촌 콤비가 훨씬 무능해 보인다. 히틀러는 아이들에게 흥분과 모험을 약속하였고 아이들은 스스로 나치가 되어갔다. 이명박은 아이들에게 광우병소고기 급식과 일제고사를 약속하였고 아이들은 스스로 촛불이 되어갔다. 정권의 무능력 때문인지, 아이들의 높은 정치의식 때문인지, 아무튼 이명박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쉽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사실 아이들을 바라보는 한국 어른들의 눈은 당시 독일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방신기와 던젼앤파이터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먹거리와 그것에 대한 권리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우리 어른들이 아닌가. 그리고 나서도 여전히 그들을 ‘미숙한 아이들’로만 바라보며, 우리가 너희를 지켜줄게라고 외치며 촛불집회로 뛰어나간 우리들이 아닌가.

이명박은 아이들마저 적으로 돌아서게 했지만, 누군가는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히틀러처럼 악용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스스로 나치가 되어가는 것이 두렵다면, 혹은 경쟁과 차별을 몸과 마음에 각인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러한 사회구조를 옹호하게 되는 것이 두렵다면, 우리는 우선 인정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가장 왕성하고 적극적인, 게다가 충분히 성숙한 정치적 열정을 가진 주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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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국의 병역거부 선언이 건네는 질문
이용석/전쟁없는세상활동가  mediaus@mediaus.co.kr 
 
 
2009년 2월 19일 파병국가의 군인이 될 수 없다며 한 청년이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부턴가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은 기자들을 위한 자리라기보다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병역거부자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씩 보는 자리로 변해 있었다. 은국의 기자회견 역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혹은 은국을 잘 모르더라도 은국의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재미있고 발랄한 기자회견을 하고 싶다고 말했던 은국이는 의외로 정장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자칫 필요 이상으로 근엄해 보이거나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정장을 입고 병역거부를 선언한 병역거부자들이 그동안 없었기도 했지만, 평소의 은국의 옷차림을 기억하는 사람들로서는 정장을 입은 은국의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은국이는 평소에  그를 어디에 데려다놔도 눈에 확 띄는 독특한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회견에서 지지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첫마디를 은국의 첫인상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그는 펑퍼짐한 천조가리같은 바지나 아니면 치마를 입고 있었고, 땡땡이 무늬의 착 달라붙는 상의를 입고 있기도 했고, 삭발하다시피 한 뒤통수에 ‘No War’를 염색해서 다니기도 했었다.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은국이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앞에 나서서 요란하게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 모든 일에 자신이 맨 앞에 서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어느 순간 스윽 몸을 빼고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의 질서에 자신을 맞춰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을 막기 위해 바그다드에 가는 은국이를 보면서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저 친구 참 나대고 다니는 거 좋아한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좀 더 고백해보자면 부러움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주목을 받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병역거부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의 은국이 인터뷰를 보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열린 병역거부운동의 국제 워크숍에 참석하는 은국이를 보면서 같은 예비병역거부자로서 묘한 질투심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었다. 은국이는 그렇게 이라크에 다녀오고 팔레스타인에 다녀오고 내가 해보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 후 은국이가 병역거부를 그만 둘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노동자대회에 참여했다가 경찰과 싸운 사진이 채증되어 잡혀가서 한동안 갇혀 있었는데, 그 경험으로 감옥가는 것이 너무도 싫다는 이유였다. 그 자유분방한 성격이 감옥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안쓰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럼 그렇지 한의사라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으니 결국 쉽게 포기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은국이는 잊혀져갔고 나는 그동안 병역거부로 감옥을 갔다오게 되었다. 여러 병역거부자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병역거부를 대하는 나의 느낌은 서서히 귀찮음으로 변해갔다. 병역거부자들은 나에게 친구가 되거나 아니면 고객이 되어버렸다. 감옥에 가야 하는, 혹은 감옥가는 것을 고민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고도의 감정노동이었고 감정노동에 익숙지 않은 나는 이내 지쳐버렸던 것이다. 친구라며 기꺼이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안된다면 철저하게 적정한 거리를 두며 그의 마음고생에 무관심하고자 했다. 나도 잘 살고 나왔는데 다들 알아서 자기인생 잘 살겠지, 이렇게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으면서.

그러던 어느 날 은국이가 찾아왔다. 다시 병역거부를 하고 싶다고. 그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뢰하지도 않았다.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도 했었고, 은국이 또한 과거에 한차례 자신의 병역거부 선언을 번복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은국이는 예전보다는 많이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비록 여전히 눈에 띄는 옷차림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함은 그대로였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예전처럼 그렇게 휙 선언했다가 휙 접어버리지는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 지난 2월 19일, '파병국가의 군인이 될 수는 없다'는 양심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은국씨

기자회견에서 낭독한 은국이의 병역거부 소견서는 다른 병역거부자들이 주었던 감동과는 살짝 다른 충격을 주었다. 망각. 은국이가 부여잡고 있던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을 나는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집단적으로 그 기억을 잊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던 때, 그리고 도둑놈처럼 몰래 떠나버린 자이툰 부대. 전쟁을 반대하고 내가 속한 국가가 침략전쟁에 파병한다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마음들은 어느새 시들어갔다.

나는 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사실 이라크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리고 전쟁 중에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일상은 변한 것이 없다. 목이 아프게 이라크의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라고 떠들었지만, 전쟁은 남의 나라 일이었던 것이다. 지구 저쪽 편에서의 슬픔을 우리도 느껴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슬퍼하되 나는 나의 위협받지 않는 나의 일상을 행복하게 누리고 지내왔다.

자신이 도망쳐 나온 곳에서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과 도망칠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은국이의 나지막한 말이 가슴에 와서 박혔다. 아무도 학살을 막을 수 없었고, 한국군 파병마저도 막을 수 없었던 무력감이 부끄러웠다는 은국이의 말이 내 기억 저편에 버려져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운다. 나는 어느덧 감옥에 갔다온 후 내가 병역거부를 해야 했던 이유들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은국이는 남들이 이제 다 잊어가고 있는 이라크의 기억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파병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몫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왔던 것이다.

마치 전쟁이 일어나면 세상이 지옥이 될 것처럼 호들갑 떨었던, 파병을 하고 나면 전범국가의 국민으로 창피해서 하늘을 쳐다보지 못할 것만 같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불현듯 부끄러워졌다. 결국 나는 아무렇지 않게 침략전쟁의 파병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6년이나 지났고, 전쟁을 일으켰던 부시마저 떠났고, 자이툰 부대도 돌아와 버린 마당에 이미 이라크파병은 철지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라크 사람들은 지난 전쟁의 참혹함을 삶의 모든 곳에 새긴 채 살아가고 있을 테고, 은국이처럼 한국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차마 지워버리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냥 지나간 일로 치부해버리고 이라크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도 모두가 잘살면 되는 거지 하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이제라도 다시 물어봐야겠다. 나는 파병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애써 찾아가지 않았던 평화가 나에게로 왔다. 평화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착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삶을 꿈꾸지만 버리지 못한 욕심이 심장에 붙어있어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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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여대생 사건, 경찰 설레발이 너무 불편한 이유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figtree1980@gmail.com 
 
 
슬픈 일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끔찍한 일들이 독버섯처럼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시절이다. 이럴 때는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죽음의 소식들은 어쩌면 그것에 무뎌질 만큼 혹은 하나의 죽음을 애도할 여유도 없이 너무 자주 우리를 찾아들고 있다.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있겠는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소식들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가끔씩 분위기 파악 못하고 초상집에서 혼자 들떠서 자기 자랑하는 재미에 희희낙락하는 부류가 있으니, 미운 놈은 뭘 해도 미운데 특히나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것이 바로 ‘경찰’이다.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 강모씨를 잡으면서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CSI식의 최첨단 기법을 사용했다는 자화자찬을 마주하면 왠지 모를 거북함이 밀려온다. 뭐 용산 학살에서도 이미 경험해서 대한민국 경찰이 타인의 죽음에 대해 인간으로서 가질 법한 애도나 예의 같은 것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초상났는데 지 자랑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눈치 없을지는 정말 몰랐다. 물론 범인 강씨가 저지른 죄는 인간으로 할 짓(상상하기도 싫고 무서워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을 정로도)이 아니고, 그를 검거한 것 자체는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피해자 앞에서 범인 잡은 공을 스스로 치하하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이냐.

이런 몰상식한 경찰의 행동은 그들의 인격(경찰관 개개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가지는 어떤 품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경찰의 설레발에서는 뭔가 다른 냄새가 풍긴다. 첫 번째로 경찰이 가지고 있는 치안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의 문제이다. 아무래도 경찰은 ‘치안’을 단순히 범인 잘 잡는 것으로 이해하는 듯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치안의 본래 뜻은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림. 또는 그런 상태. 혹은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보전함’이다. 즉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당연히 잡혀야겠지만, 범인이 많이 잡힌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그 사회에 범죄가 많다는 이야기이고, 그런 사회에서 맘 편히 살기란 쉽지 않다. 경찰의 역할은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범죄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노자 17장을 비유하자면 “가장 좋은 경찰은 시민들이 경찰이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경찰이다.”

물론 범죄라는 것이 단순한 형사사건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온갖 모순들이 중첩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범죄의 발생을 무조건 경찰의 책임만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연한 일에 대한 과분한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경찰을 보고 있자면, 과연 경찰이 원하는 게 범인 많이 잡아서 실적을 높이는 것인지, 잡아야 할 범인이 없을 정도로 치안이 안정된 사회를 원하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28일자 중앙일보 12면.

두 번째는 과학수사라는 언어에 포함된 고약한 냄새다. CCTV를 이용한 CSI식의 과학적인 수사방법으로 범인을 검거하였고, 여죄를 밝히기 위해 프로파일링 기법을 도입한다는, 마치 무슨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동안 가학수사를 전문으로 해온 과거를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좋다. 아무리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통령의 시대라고 해도 범죄 수사에서 구둣발로 자백을 받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과학수사 좋다. 근데 한국경찰이 과학수사 이야기하면 왠지 <살인의 추억>에서의 송강호가 과학수사 이야기하는 것 같은 좀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경찰조사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안다. 한국경찰이 이해하고 있는 과학수사라는 것이 조서 쓸 때, 연필 대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정도라는 것을. CCTV 300여대에 찍힌 차량 7천여대를 선정해 분석했다는 것은 경찰의 ‘우직함’에 대한 상징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과학수사로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저수지 물고기를 잡던 것을 전기펌프를 돌려 잡았다고 해서 과학적 어로행위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학적 사고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다. 한국 경찰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문학적인(감수성은 형편없이 떨어지지만) 사고에 기반한 수사를 한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연행된 많은 사람들이 일단 연행하고 나면 어떻게든 죄를 씌우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경찰조사에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한국경찰은 과학수사 운운하려면 CCTV니 뭐니 하는 기계(흔히 고등학교 문과보다 이과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되는)를 사용해 범인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번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범인의 여죄는 무엇이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리적고 합리적인 접근법을 보여줘야 한다. 더군다나 CCTV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과학수사(!) 기구들에 대해서는 프라이버시의 침해 등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고, 이는 범죄 예방보다는 검거를 위한 수단이지 않은가. 경찰의 과학수사 운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비과학적인(비논리적인) 경찰의 수사방식을 기계의 힘을 빌어서 눈가리고 아웅해보자는 속셈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끔찍한 사건을 막아야할 곳에는 있지 않고 끔찍한 학살을 저지르는 곳에만 존재하는 한국의 경찰. 치안의 확보보다는 범인 검거에만 힘쓰는 경찰.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소잃고나서 외양간 고치면서 새로운 장비 사용했다고 거들먹거리는 경찰. 정태춘의 노래 <아, 대한민국>의 한 구절이 슬프게 떠오른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 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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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철거촌에 대한 기억, 그리고 용산에서의 학살 
 
 
“어버버버.”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했다.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이 익숙한 듯 그녀의 말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녀는 지금은 ‘The#’이라는 아파트가 들어서있는 상도2동에 살았었다. 상도동 주민들도 지금의 용산 주민들처럼 강제철거에 맞서 싸웠었고,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상도동 철거민대책위(이하 철대위)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었다.

2002년 겨울이었다. 상도동에도 예의 그 골리앗이라고 부르는 파란 가건물이 가분수처럼 삐죽 솟아올랐다. 나와 내 친구들은 그 골리앗을 쌓는 일을 함께 도왔다. 이 골리앗이 철거깡패로부터,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경찰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길 기원하며 고사도 지냈었다. 겉으로 보기엔 괴상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가야 해서 살짝 무섭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망을 본다는 핑계로 저 멀리 우중충한 서울하늘을 바라보며 수다를 떨고 있노라면 역설적이게도 무척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철거깡패들의 도발이 잦아들게 되자 우리는 더욱 자주 그곳에서 밤을 새웠다. 낮에는 지역의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방을 진행하고 어둠이 세상을 뒤덮은 시간에는 돌아가면서 망을 봤다. 몇 차례 깡패들과 싸움도 있었다. 돌멩이를 던지고 화염병이 날아 다니고 화장실에서 건져 올린 똥물까지도 우리가 뒤집어쓰면서도 깡패들을 저지하기 위해서 던졌다. 몇몇은 크게 다쳤고 몇몇은 깡패들에게 혹은 경찰에게 붙잡혀갔다. 철거반원 중에 몇 명도 우리 쪽에 잡혀왔었다. 공포심으로 가득 차 말조차 더듬던 그 철거반원들은 무슨 일인지도 잘 모르고 고용되어 온 일용직들이었다.
 

▲ 상도동 철거 당시의 골리앗

아마 그 때쯤이었을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비폭력적인 삶의 방식들을 접하고 있던 나는 과격한 철거민 투쟁에 어느 정도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혹은 두려움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철거민들이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들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나는 후배들에게 함께 철거촌에 가자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도 점점 멀어져갔다.

결국 상도2동 골리앗은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다. 당시 철대위 위원장의 부인이었던 그녀는 그때의 충격으로 쓰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도 건강은 회복했지만, 사라진 것은 골리앗과 삶의 터전 뿐 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일궈온 소중한 일상과 관계들이 송두리째 사라졌고 그녀의 말도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먼발치에서 그저 미안한 마음으로 상도동의 철거를 바라보고만 있었던 나를 다시 만났을 때 상도동 주민들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보고 싶었지만,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병역거부운동으로 뛰어든 나는 더 이상 철거촌에 가는 일이 없었다. 어쩌다 집회에서 그 당시의 분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어디 철거촌에서 강제철거가 들어왔다더라 하는 소식을 접해도 마음만 안타까울 뿐 움직이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딱히 철거민 운동에 연결되어 있는 관계가 없었기도 했지만, 철거민들의 과격한 방식이 더 이상 나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님은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돌아가셨던 현장 근처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며, 그 때 농민들이 죽고 당신이 살아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용산의 끔찍한 학살을 보면서 그분들이 죽고 내가 살아있는 것 또한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상도동의 골리앗 안에서 내가 있을 때, 경찰이 이번처럼 초강경진압을 했었더라면, 용산철대위 분들 대신에 상도동 철대위분들과 나와 나의 친구들이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내가 가자지구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사소한 운에 기인한 것이다. 어쩌면 가자지구와 용산에서 나 대신 죽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모든 학살의 피해자들이 단지 운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이것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이미 예견된 학살이다. 한겨울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을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건설회사와 철거깡패와 경찰이 아니었다면, 아니 그 이전에 땅투기로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과 이에 영합하는 정책을 펼쳐온 정부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죽어가는 이들은 땅에서 쫓겨나 하늘 근처 달동네에 살다가 그마저도 하늘과 친해지는 것을 시샘하는 부자들에 의해 집을 빼앗기는 가난뱅이들이다. 이미 너른 대지를 다 가졌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하늘 가까운 곳에서 달님과 별님을 벗삼아 사는 꼴을 못봐주고 동네를 철거한 후 바벨탑과도 같은 저 눈부신 주상복합으로 돈놀이하는 사람들은 절대 불에 타 죽을 일이 없다. 지독한 인과관계 속에서 다만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운에 따라 유명을 달리하는 것이다.

역시나 철거민들의 죽음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심테러의 성격이 있었다며 경찰특공대 투입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과 이번 기회로 불법폭력집회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청와대,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을 전국철거민연합에 돌리려고 하는 보수언론이 그들이다. 그들에게 애당초 상식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 만큼 알았고 인간으로서의 수치심마저 져버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수치심까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그래서 저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부끄러운 사실을 아프게 인정해야 하는 힘없는 사람들의 숙명이 서글플 뿐이다.

철거민들의 폭력과 배후세력으로 전철연을 물고늘어지는 저들의 논리는 어쩌면 한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없기에 상상력이 고갈된 자들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인가 보다.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논리적인 완결성이라도 가지고자 한다면, 철거민들의 폭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한국사회가 약자들에게 가하는 구조적인 폭력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약자들이 사용하는 저항폭력이 언제나 옹호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국가폭력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한다거나, 혹은 약자들을 폭력으로 내몰고 있는 구조적 폭력에 대해서 눈감아 버리는 것은 가장 손쉽게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경찰의 초강경진압으로 끔찍한 참사가 벌어져 순식간에 여섯 목숨이 세상을 떠났고 이 또한 묵과할 수 없는 문제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주택정책은 수많은 철거민들을 조용히 서서히 죽여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살인정권인 이유는 이번 경찰폭력으로 인한 학살 때문만이 아니라 서서히 천천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숨통을 조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 없이 철거민들의 폭력시위를 부각시키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의 고립장벽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공정한 척하며 이스라엘의 학살과 팔레스타인의 로켓포를 함께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마도 다섯 분의 철거민과 한 명의 경찰관이 죽은 자리는 골리앗보다 훨씬 높은 빌딩이 들어설 것이다. 나는 그 빌딩을 상상만 해도 숨이 딱 막힌다. 그것은 그 높고 넓을 빌딩이 한조각의 하늘을 가리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의 피와 죽음으로 세워진 욕망의 마천루. 땅덩어리를 모두 다 차지한 것으로 모자라 하늘마저 독점하고 싶어하는 천박한 부자들의 욕심. 과연 세상이 이런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과연 수치심을 망각한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용산을 지날 때면 다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않겠다. 높은 빌딩의 눈부신 유리창 저 밑에 묻혀있는 철거민들의 피와 뼈, 그리고 사라진 동네와 삶을 기억한다면 내 눈길이 향하는 곳은 높은 곳일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자행한 자들과 내가 같은 종의 인간이라는 수치심이 떠오르는 장소에서 빳빳히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볼 정도로 뻔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용석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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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국민과 약속한 대체복무제 꼭 지켜야 
이용석/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figtree1980@gmail.com 
 
 
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선물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차가운 겨울 한복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훈훈함. 크리스마스, 그것도 본판보다 흥미로운 크리스마스 이브에 국방부로부터 선물 하나를 받았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 분 하신 말씀들이 구구절절 옳다고 느끼고 있어서 그 분 말씀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바, 예수님 생신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면 그 뜻에 맞는 선물을 주고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고 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시던 예수님 말씀과는 정반대의 선물이 국방부로부터 도착했다. “대체복무제도 전면백지화.” 뭐 사방군데서 막나가는 시대인지라 이 정도 가지고는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 해피한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해피하지 않은 선물을 받는 일은 너무나 불쾌할 따름이다.

일제고사니, 현대사교과서 수정이니 워낙 뒤로 가는 정부에서도 원래부터 가장 뒤쪽에 있던 곳이 국방부인지라 이런 상황이 새삼 새로울 것도 없다. 불온도서 목록 선정에서부터 자신들의 사고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발짝 물러나 있던 국방부가 이렇게 자신있게 자신이 한 약속조차 어기려는 속셈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은 아마도 ‘68%가 대체복무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대체복무제도의 시행여부를 판단하겠다”는 핑계로 대체복무 도입을 차일피일 미뤄왔던 국방부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 12월 24일자 헤럴드경제 10면.

 
여론조사의 허구성

이번 여론조사는 병무청이 대전대학교 ‘진석용정책연구소’에 의뢰한 연구용역 사업의 일환이었다. ‘국민여론조사’, ‘공청회’, ‘사회복지시설 실태조사’, ‘제도일반’의 분야로 나누어 이루어진 연구 중에서 현재 국민여론조사의 결과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여론조사는 ‘리서치앤리서치’라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 지난 11월 17일에서 21일 사이 전국의 성인남녀 2000명에게 전화조사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대체복무 반대가 68.1%로, 찬성 28.9%를 거뜬히 앞질렀지만, 이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는 설문조사의 결과도 많이 있다. 예컨대 마찬가지로 병무청 용역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지난 10월 국회공청회에서 발표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회의원, 종교인, 법률가, 교수 등 전문가 의식조사에서 80%가 넘는 사람들이 대체복무를 찬성하였다. 물론 이는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가 아니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결과는 어떠한가. 2008년 9월에 실시된 리얼미터와 961sample의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복무 찬성이 반대를 앞서기도 했었다(리얼미터:찬성 44.3%/반대38.7%, 961sample:찬성 55.9%/반대38.9%, 출처 문희상 의원실 보도자료).

같은 사안을 가지고 이렇게 커다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여론조사가 가지는 한계에 기인한다. 여론조사는 아무리 표본을 넓게 잡아서 진행을 하더라도 사람들의 인식의 한 단면만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들의 병역비리로 나라가 떠들썩할 때 설문조사를 하면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많이 나오고 반대로 국방부가 한참 삽질하면서 욕먹고 있을 때는 대체복무에 대한 찬성 의견이 많이 나오기 마련이다. 또 하나의 함정은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질문이 군대가는 것과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면 사람들은 군대보다 쉬울 거라고 생각되는 대체복무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반면 병역거부자들이 감옥가는 것을 부각시켜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지 감옥에 보내야 하는지를 물으면 감옥보다는 대체복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이번 병무청 용역으로 진행된 여론조사와 2005년 임종인 의원(당시 열린우리당)실에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의 비교이다. 지금보다 병역거부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이 안 좋았던 3년 전 임에 불구하고 58.9% 대 25.9%로 찬성의 비율이 높았다.

     
    
이번 병무청 용역으로 이루어진 설문조사는 이미 질문에 대체복무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병역거부 문제처럼 이렇게 결과가 뒤바뀌는 사례에서는 설문조사를 통한 여론이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받기 힘들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사안이 사회적으로 첨예한 대립 상태에 놓여 있구나 하는 정도일 뿐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까지 사회에 일반적인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대체복무에 대한 찬성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경향성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문제가 처음으로 이슈가 되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질문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대체복무 반대의 의견이 높았지만 해를 거듭해 갈수록 찬성의 퍼센트가 높아져 이제는 질문에 따라서는 반대를 압도하는 경우도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소수자 인권를 여론조사로?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중요한 여러 가지 사안들을 결정하는 데 여론조사의 힘에 크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서로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객관화된 숫자로서 여론조사의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살폈듯이 이것은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특히 소수자의 인권문제에 있어서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소수자는 사회의 보편적인 잣대와는 다른 생각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반대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도 게이나 레즈비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체복무제도에 반대해도 병역거부자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소수자 문제의 해결은 보편성을 획득한 다수의 의견에 소수를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보편성의 잣대로만 소수자들에 대해 판단하고 보편적인 기준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며 소수자들에게 거대한 폭력일 뿐이다.

국방부, 치졸한 변명은 그만두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라

국방부의 국민여론 핑계와 여론조사 결과 뒤에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백지화하려는 시도는 참으로 치졸하고 비겁한 행동이다. 물론 국방부는 아직까지는 공식입장을 자제하고 있고 병무청 연구용역 결과만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이미 하기로 약속한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게다가 그 핑계로 댄 것이 국민적인 합의인데, 그렇다면 2007년에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발표할 당시에는 국민적인 합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발표했단 말인가? 국방부의 이 모순적인 변명은 스스로를 궁색하게 만들 뿐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국방부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고만 있는 국방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 있다. “왜 그래. 아마추어 같이.”

병역거부가 사회 이슈가 된 2001년 이후에만도 4800여명의 젊은이들이 전과자가 되었다. 현재는 450여명이 수감되어 있고(물론 이 숫자만으로도 세계 최고다) 만약 국방부가 대체복무제도를 전면 백지화해 지금까지 국방부의 약속을 믿고 입영을 연기하거나 재판이 연기된 사람들이  한꺼번에 감옥에 들어간다면 병역거부 수감자는 1000명을 훌쩍 넘기게 된다. 국가인권위, 유엔, 하다못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까지도 한국의 병역거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마당에 국제적인 망신살만 늘어나는 것이다. 국방부는 더 이상 비겁하게 국민여론을 핑계삼지 말고, 2007년에 스스로 국민과 약속한 대체복무 제도의 시행에 힘써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국방부가 될 것인지, 국민과의 약속조차 헌신짝처럼 버리면서 치졸한 핑계만 일삼는 국방부가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국방부의 판단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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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이용석/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figtree1980@gmail.com 
 
 
왠지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과 강만수 재정기획부 장관에게 밀린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지,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한동안 봉인되었던 입을 풀었다. 그리고 역시나 주옥같은 명언들을, 그 상상력도 참으로 기발하여 잊혀지지 않을 ‘말’들을 세상에 풀어놓으셨다. ‘말’들이 날뛴 자리는 서울 용산의 국방부 대회의실, 김태영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 국방부 직할부대장, 기관장 등 1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였다. 아마도 장관님의 섣부른 ‘말’들에 장단 꽤나 맞추는 별들이 모인자리였나 보다. 사실 입 하나 잘못 만나서 의도치 않은 모습으로 세상에 튀어나온 ‘말’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문제는 너무 쉽게 뱉어내는 이상희 장관의 말이 아니라 그 속에 뿌리박혀 있는 국방부 장관의 역사관과 안보관이다.

▲ 12월 9일자 동아일보 2면.

 
 
“입대하는 장병 중에는 대한민국 60년을 사대주의 세력이 득세한 역사로, 군은 기득권의 지배도구로서 반민족, 반인권적 집단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국가관, 대적관, 역사관이 편향된 인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상희 국방부장관의 현실인식은 일면 타당하다. 군 입대 장병들 중에는 국군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인식을 가진 젊은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국군을 미군의 똘마니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애국심이 철철 넘쳐 주적 북한으로부터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 군대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수도 있다. 다양한 생각들의 공존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사회에서 당연한 일련의 상황들이 장관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나 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국군이 자국민에게조차 총구를 겨눈 역사를 알고 있다면, 군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전시작전권조차 없어서 미군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자국의 군대를, 혹은 식탁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일어선 국민들에게는 그렇게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면서 강대국 정부들에게는 비위 맞추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정부를 사람들이 사대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너무나 충분하다. 혹 위의 생각들이 틀린 생각이면 또 어떤가. 군대가 스스로 이야기하는 국민들의 평화가 기껏 재산권이나 땅덩어리의 평화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적인 장을 지켜가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대의 존재 이유라면 말이다. 
  

▲ 이상희 국방부 장관 ⓒ여의도통신

이번 일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정권에서 약속하고 유엔에서도 거듭 권고하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을 때, 이념적 편향을 들먹거리며 주제넘게 교과서 수정을 이야기했을 때, 그리고 불온서적 목록이라는 시대의 코미디로 몇몇 출판사에 대한 왕비호식 노이즈마케팅을 펼쳤을 때 사태는 예견되어 있었다. 결국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는 길을 택한 것이다. 어리석게도 그리고 무시무시하게도 그는 총칼이 글과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불온서적 선정과 관련하여 “장병들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적 가치를 신념화하고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지닌 병사와 시민으로 육성하는 군의 정신전력 강화 활동이 이념논쟁화됐다”는 이야기는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특정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장병들에게 강제로 주입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작전체제와 훈련체제, 부대관리, 정신전력, 간부들의 복무자세 등 모든 분야에서 군을 재조형(Reshaping)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 말을 한 사람이 2008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인지, 세상을 뜨지 못한 2차대전 시기 나치독일이나 일본제국주의의 망령인지 헷갈릴 정도다.

또한 “이들을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구비한 강한 전사,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국가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고 상관에게 복종하는 ‘강한 전사’는 국가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민주시민’과는 정반대의 인격체이다. 이 말은 사실 입대한 ‘민주시민’을 ‘강한전사’로 개조하겠다는 말이다. 근대국민국가 형성의 핵심은 국민개병제를 통한 징병제 사회의 성립이었지만, 역으로 군대에 참여한 시민들이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수단인 군대를 통제하는 행위가 언제나 함께 존재했다. 시민들의 힘이 미약한 국가들에서는 군대의 폭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그래서 군부에 의한 독재가 필연적으로 일어났다. 한국의 역사가 가장 단적으로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즉 어느 국가가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폭력이 집중되어 있는 군대를 성숙한 시민들이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핵심인데, 이상희 장관의 인식은 이 핵심적인 고리를 완전히 거꾸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발언 뿐만 아니라 북핵 선제 타격 발언, 북한 급변사태 때 중국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발언 등에서 드러나는 군 수뇌부들의 안보관 또한 심히 우려스럽다. 국가가 군대를 동원해서 국민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은 적과 전쟁해서 이기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어떤 국가와도 어떤 집단과도 무력적인 충돌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전쟁억지는 강한 군사력이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이는 때때로 불필요한 군비경쟁을 강화할 뿐이고 어쩌면 정반대의 방법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지나치게 호전적이거나 군사안보에 매몰되어 있는 군 지도자는 오히려 국민들의 평화와 안보에 독이 될 수도 있다.

국가가 국민들의 안보를 위해서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점차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아무리 강한 군사력으로도 광우병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없듯이, 과거의 군사안보만으로는 국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국방부 장관은 민주주의와 군대, 국가에 대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굳세게 믿으며 그것을 사병들에게 억압적으로 강요하는 장관이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환경과 안보요건들을 두루 살피고 국가가 국민의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장관이다. 총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 하고 군사적인 긴장관계를 더욱 강화해가는 국방부 장관의 역사관·안보관이야말로 가장 편향적이고 위험하다.

 

 
   
 

애써 찾아가지 않았던 평화가 나에게로 왔다. 평화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착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삶을 꿈꾸지만 버리지 못한 욕심이 심장에 붙어있어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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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이용석/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figtree1980@gmail.com 
 
 
운동권 총학생회가 10년 만에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잃어버린 10년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학생운동권들의 구호일지도 모르겠다. 살인적으로 높아지는 등록금 문제에 대해 비운동권총학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면서, 그리고 올해 광우병 소고기 촛불집회에서 비운동권학생회가 소극적인 모습들을 보이면서 학생들이 다시 운동권 학생회를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운동권학생회가 한나라당처럼 10년 동안 아무 반성없이 지내오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내심 관심을 가져본 김에 어떤 학생들이 선거에 나오고 또 당선이 되었는지 찾아본다.

그런데, 후보들의 약력을 보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히었다가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약력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육군만기제대”. 옆 선본의 후보는 더욱 친철하다. “육군병장만기제대(강원도 XX사단)”. 다른 곳들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의 후보들이 자신의 군경력을 약력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예비역들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왜 모든 후보의 약력에 “만기제대”가 들어가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을 뿐이다.

▲ ⓒ고재열

       
약력은 후보자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장 간결하게 유권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이 해왔던 수많은 일들 중에 유권자들에게 특히 알리고 싶은 중요한 것들만이 약력에 오를 수 있는 영광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군만기제대가 유권자에게 “나를 꼭 찍어주세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핵심 내용이라는 이야기인가? 나는 학생회장을 하는데 육군만기제대의 경험이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끼치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병장까지 무사히 마쳤다는 것이 밑바닥에서 리더까지 올라와본 경험이 있는 것을 증명한다는 반론이 나오기도 한다. 리더십과 통솔력을 말하려면 차라리 초등학교 때 반장했던 경험을 약력에 넣는 것이 더 좋다. 병장은 군대가서 시간 지나면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반장은 엄연히 투표로(때로는 선생님의 지명, 혹은 아이들에게 뇌물을 돌리는 경우도 있지만) 선출된 리더이지 않은가. 혹자는 학생들이 후보가 약력에 비어있는 2년의 시간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 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 변명은 더 궁색하다. 학생회 선거 후보들이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혹은 연예인이라 해도 자신의 모든 연대기를 사람들에게 공개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주 짧게 표현해야 하는 약력에서라면 좀 더 필요한 이야기들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

학생회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군필의 경력을 자신의 약력에 반드시 넣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부정한 방법으로 군대를 기피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였지만 이회창 후보의 낙선에는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 군대를 기피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아마도 그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모든 공직 출마자가 자신의 병역과 관련하여 아무런 비리나 기피의 시도가 없었음을 증명하게 되었던 것 같다. 공직 출마자는 병역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했던 경력이 없어야 함은 당연하다. 온갖 부정비리를 저지른 경제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선거에서 당선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불행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나 가족들의 병역의무를 혹시나 부당한 방식으로 회피하지는 않았는지 검증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선관위원회에 제출하는 문서도 아니고 유권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가는 약력에 군필의 경력을 넣는 것은 검증을 훌쩍 넘어선 다른 의미들을 발생시킨다. 여기서 군필의 약력은 군대를 가지 않는 여성이나 장애인, 혹은 군대를 거부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우월한 위치를 선점하는 선전의 문구가 되어버린다. 근대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시민권의 획득이 징병 대상의 확대과정과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은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에도 특히나 한국에서 아주 유효한 지적인 것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 장상 국무총리 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군대도 안다녀온 여자가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냐”고 했던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천박한 인식은 사실은 대한민국의 평준적인 시선이었던 것이다. 단지 그 국회의원의 센스가 남들보다 떨어졌을 뿐이다.

학생회선거에 출마한 학생들이 자신을 여성후보로부터, 혹은 군대를 안가거나 못가는 다른 남성후보들로부터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군필 약력을 넣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예전부터 하던 대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가 어떻든 약력의 한 가운데 박혀있는 군필의 경력은 그들이 군대문제에 있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증명을 넘어서서 군복무의 경험을 바탕으로 군미필자들에 대한 우월한 시민권을 형성하게 된다. 사회의 지배적인 구조는 원래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보다는 구성원들의 무의식적인 행위에 의해 더욱 강력해지는 법이다. 만약 스스로 사회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면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혹은 진보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군필의 약력을 통해서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구성원들을 특정한 잣대를 가지고 위계화시키는 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10년 만에 학생회 선거에서 선전하고 있는 운동권 학생들이 학생회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학생운동권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리고 그 문제들은 굉장히 본질적이고 심각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마도 학생운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말의 애정까지 끝내 떨쳐버릴 수는 없는 모양이다. 다만 내년 선거에서는 “병장만기제대”를 약력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만이 1등 시민이 되는 사회에서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비이성적인 사회를 지속시키고 있는 사람 중에 내가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좀 더 민감한 감수성으로 느껴주면 좋겠다. 

애써 찾아가지 않았던 평화가 나에게로 왔다. 평화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착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삶을 꿈꾸지만 버리지 못한 욕심이 심장에 붙어있어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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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타이거즈 팬의 2009년 소박한 희망
이용석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webmaster@mediaus.co.kr 
 
 
완승이다. 미라클 두산을 이토록 쉽게 제압하다니 말그대로 어메이징 SK다. 뭐 한 경기쯤이야 KBO 관중수입을 위해서 기꺼이 헌납할 수 있다는 듯이, 혹은 약자의 반란을 꿈꾸는 무리들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안겨주기 위해서였다는 듯이, 1차전을 가볍게 몸풀고 내리 4게임을 가져갔다. SK는 작년보다 강했지만 두산 또한 작년보다 훨씬 강했다. 리오스는 없어졌지만 두산의 1, 2, 3, 4번은 모두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다. 타격 2위 홍성흔과 11승에 17홀드를 기록한 이재우는 국가대표에 뽑히지도 못했었다. SK는 어쩌면 저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서 야구를 해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리그의 다른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1년 내내 선보였다. SK의 한국시리즈 2연패는 누구나 쉽게 점칠 수 있었고, 2009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이호준이 돌아오고 최정과 김광현은 아직도 성장 중이고, 젠장 1위팀임에도 박경완의 노쇠화 말고는 온통 플러스 요인만 가득하다. 과연 SK의 3연패는 가능할까? 참고로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팀은 전설의 80년대 해태밖에 없다. 90년대에도 여전했던 절대강자 해태도 완벽한 짜임새를 자랑하던 현대도 절대 깨지지 않을 것만 같던 선동열 감독의 삼성도 2연패에서 한 타임은 쉬어가야 했다.

▲ 11월 1일자 국민일보 12면.

   
 
한국사회의 어떤 부분이 안 그렇겠냐마는 야구 또한 1등만을 기억한다. 물론 한국시리즈라는 큰 경기에서 발휘되는 집중력과 긴장감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야구장의 폭발적인 공기는 한국시리즈 우승팀에 쏟아지는 그 언론의 독식이 충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아찔한 것이긴 하다. 1등만을 기억하는 사회의 1등자리는 가끔씩은 개천에서 태어난 용이 가져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흔히들 생각하는 가져갈 만한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이 정석이다. 아무래도 이 법칙은 야구판에서도 하나의 공식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할 때, DJ선생을 열렬히 사모사던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조용히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동열은 떠나고 김성한은 은퇴했어도  이종범이 남아있고 이대진이 건재했던 해태타이거즈는 97년 이후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해태타이거즈의 열성팬인 나는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보다 해태타이거즈의 잃어버린 10년이 왠지 더 가슴 아프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혹자는 농담에 진담을 섞어서 돈없는 구단 해태의 막강함의 원동력을 정치적인 소외감을 야구로 승화시킨 것으로 설명하고는 한다.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치적인 소외감을 털어버렸던 97년 이후로 우승의 문턱에서 멀어진 해태를 보면 왠지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는데 해태의 후신인 기아가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포스트시즌에는 진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미 한 번 한을 풀어서 옛날과 같은 오기가 생기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이렇게 설명하기는 왠지 개운하지 않다.

97년이 지난 이후로 한국사회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IMF가 몰고 온 가장 무서운 사회변화는 더 이상 돈없는 사람이 성공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과거의 해태처럼 돈없이도 야구를 잘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야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에서 돈과 권력은 성공의 필수조건이 되어버렸다. 모든 판검사들이 강남에 몰려 사는 기이한 풍경이 익숙해지는 날이 조만간 다가올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학생들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대가 강남으로 이사가는 황당한 사건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슬픈 일이다. 하물며 한낱 공놀이인 야구는 자유롭겠는가.

엄지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미쳐가며 야구를 했던 까치 오혜성이나 타고난 재능으로 그저 야구를 즐기는 소년인 H2의 히로와 같은 캐릭터가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한국시리즈 우승은 돈 펑펑 쓸 수 있는 팀들만이 가능하다. 부자구단으로 상대팀의 주축선수들을 돈으로 사들이며 한 때 온갖 질타를 받았던 삼성은 97년 이후 무려 1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3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일궈냈다. 도대체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강팀 현대는 FA 심정수와 박진만을 삼성에 넘겨주면서 우승한 바로 다음해인 2005년을 7위로 마감했다. 현대구단의 재정이 예전 같았다면 심정수와 박진만을 삼성에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우승은 아니더라도 쌍방울이나 태평양 같은 도깨비 팀들이 간간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던 90년대와는 달리 97년 이후 한국 프로야구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만한 팀들이, 다시 말하면 그만큼 재정적인 투자를 할 여력이 되는 팀들만의 가을잔치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히어로즈가 90년대 팀이었다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돈을 많이 쓴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다. 돈을 펑펑 쓰더라도 망하는 집안은 망한다. 기아팬으로서는 고맙게도 진필중과 마해영을 데려가준 2000년대 LG가 그렇고 90년대 삼성이 그랬다. 4명의 메이저리거를 보유했다며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올 시즌 초 기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건 자본주의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자가 항상 성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정불변의 법칙은 돈 없으면 성공 못한다는 것이다. 넉넉한 자본을 가지고도 망하는 판에 돈없는 사람들은 그저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그들만의 승리일지도. 몇몇의 성공사례를 신화로 만들며 모든 사람들에게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강요하는 이 사회의 시스템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언제나 반란의 드라마를 기획해야 팬들의 외면을 받지 않는다. 완벽한 절대강자는 언젠가는 피도 안마른 하룻강아지에게 깨져나가는 유쾌한 상상이 스포츠가 주는 매력이다. 혹은 개천에서 나오는 용들의 존재는 마치 우리 사회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만 같은 착각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온갖 미디어들과 팬들은 연습생 출신의 장종훈에게 경의를 표하고 신고선수 출신인 김현수의 성장을 놀랍고도 뿌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물론 2000년대의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과거보다는 드물기는 하겠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다. 그건 그저 개인일 뿐이다. 그래도 우승팀은 개천물 한 번 보지 못한 동네에 사는 팀이다. 오히려 연습생이나 신고선수들의 성공은 노력하면 된다는 성공의 신화를 미화시키는 하나의 교란 장치일 뿐이다. 적어도 2008년의 한국 야구에서는 아니, 한국 사회에서는 노력보다는 돈이 배반당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야구가 예전보다 재미없다. 물론 내가 응원하는 해태(기아)가 잘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플레이 수준과 경기의 질이 그리고 경기장의 시설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프로야구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돈 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이 사회의 공식으로 너무도 충실히 이행하기 때문이다. 하기사 이런 비교가 점점 무의미해져 가고 있는 것이 이미 프로야구 구단들은 다들 대기업들이 접수하고 있으니 성공하는 자도 실패하는 자도 다들 부자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2009년 SK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히어로즈를 응원해야 하나? 하지만 센테니얼 뭐시기가 하는 꼬라지를 보면 히어로즈의 선수들이 불쌍해도 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저 나의 청소년 시절의 우상 이종범이 우아하게 은퇴하고 해태의 마지막 에이스 ‘Ace of Ace’ 이대진이 통산 100승을 채우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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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공권력 투입 요청은 자승자박
이용석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webmaster@mediaus.co.kr 
 
 
엘리베이터는 멈춰섰다. 안 그래도 좁은 비상계단은 전투경찰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지나가다 얼핏 보면 마치 쿠데타라도 일어나서 누군가 점령한 국가기관을 공권력이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혼자만의 지나친 느낌인 걸까? 아마도 건물 외부에 새겨진 ‘국가인권위’라는 간판 때문에 그런 착시 현상이 일어난 듯하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찬밥 신세였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그 시절에는 ‘국가’는 ‘인권’이라는 단어보다는 ‘침해’라는 단어가 퍽이나 잘 어울렸다. 물론 지금도 국가가 침해하는 인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국가’와 ‘인권’이 같은 단어 안에 함께 쓰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세상은 된 것이다.
  

▲ ⓒ참세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세상사지만, 인권위 또한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순탄한 길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으로까지 내세웠던 국가인권기구는, 바로 그 국가권력에 대해서 비판해 마지않는 인권단체들의 노숙농성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이후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적 청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 등 중요한 사회이슈들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보수세력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진보단체들이나 인권단체들도 인권위에 대한 비판을 에두르지 않았다. 인권위 위원장이 선출될 때마다 밀실인선을 비판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수감시절 국가인권위의 효용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인권노이로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선의 교도관들과 공무원들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인권위의 존재 때문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 것이 아니라 귀찮은 일에 얽히기 싫어서였다고 하더라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위기의 계절은 올 초에 도래했다. 대운하에서부터 영어몰입교육까지 세상을 깜짝 깜짝 놀래키는 재주를 가진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로서는 어설퍼도 인권을 이야기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귀찮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윈회가 그나마 인권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된 국가기구여야만 한다고 생각한 인권단체들은 또다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한겨울 칼바람 앞에 맨살을 드러냈다. 8년 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위해 노숙농성을 했던 바로 그 계절 바로 그 자리에서. 이 비극적인 역사의 반복보다 더 서글픈 것은 국가인권위 탄생에서부터 내재되어 있는 아이러니였다.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인권단체가 국가기구를 위해서 노숙을 해야 하는 어색함. 또한 국가가 인권의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는 것이 근본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들.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갈피를 잡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국가인권위원회를 무력화시키려는 힘이 너무 컸던 것이다.

2008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이 나타났다. 그보다 앞서 청와대는 김양원 목사를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으로 임명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지만, 털어도 털어도 함박눈 같은 먼지가 계속 나는 사람은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인권감수성을 요구받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이라면 말이다. 장애인의 결혼을 불임을 전제로 허락했을 뿐 아니라 임신한 장애인 부부에게 낙태를 종용한, 시설장애인의 생활을 열악하게 만들어 생긴 돈으로 자기 배를 불린 인물이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에 어울린다면, 조시 부시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줘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김양원이 처음은 아니었다. 한 달 전 최윤희 한나라당 윤리위원의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임명에서도 많은 인권단체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냈었다.

물론 김양원의 임명은 국가인권위회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적인 인사가 인권위원으로 임명되고 나서 한 달이 넘도록 ‘책임 없음’만 늘어놓는 국가인권위원회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인권위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모였던 인권단체들이 김양원 목사의 인권위원 임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인권위원 인사 검증시스템 확보를 위해서 또 다시 모였던 것이었다.

27일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가 있는 13층 앞에서 김양원 목사의 인권위원 임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농성에 들어가려 했던 인권단체 활동가들 앞에 놓인 것은 전투경찰이었다. 촛불집회에서 과잉진압으로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해서 인권위가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경고하라고 권고했던 바로 그 경찰! 인권위의 판단이 맞다면, 인권위는 스스로가 인권침해를 했던 경찰에게 자신의 안위를 지켜달라고 요청한 것이 되는 셈이다. 물론 경찰의 모든 활동을 인권침해로 일반화하면 안 되지만, 인권위 사무실로 올라가는 6층 계단을 위협적으로 막아서고 있는 경찰들을 보면서 인권위의 촛불진압 인권침해 유감 표명이 뒤틀린 퍼즐처럼 오버랩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국가인권위를 만들기 위해서,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썼던 인권활동가들이 느꼈을 상실감은 물론 매우 크겠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도 국가인권위원회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세력들의 폭풍과도 같은 공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폭과도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한 인권위원회가 앞으로 과연 거대한 권력과 폭력에 맞서 시민들과 약자의 인권을 옹호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국가가 인권의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물론 유효하지만 또한 심각한 인권침해에 놓여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인권위의 존재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인권위원회가 할 일은 장애인 활동가들의 농성을 두려워해서 엘리베이터를 세워버리는 일도, 인권활동가들의 액션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시설물보호요청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인권위가 해야 하는 일은 김양원 목사가 저지른 반인권적인 행위들이 이 세상에 발붙이지 못하게 장애인들의 편이 되어 주는 것이고,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에게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을 감시하는 일이다. 스스로의 목을 졸라버린 국가인권위윈회가 그 목을 움켜쥔 자신의 손에 힘을 더 줘서 결국엔 반신불수가 되거나 숨이 넘어가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손을 풀면 몇 번 그냥 켁켁 거리고 말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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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용역 뒤치다꺼리 낯부끄럽지 않나
이용석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webmaster@mediaus.co.kr 
 
 
세상에 무슨 무슨 날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물의 날, 문화의 날, 교정의 날…. 세상에 납세자의 날도 있다. 나처럼 세금 한 번 제대로 안내본 사람은 어쩌라구. 게다가 크리스마스니 석가탄신일이니 이런 종교적인 기운 충만한 날부터 해서 밸런타인데이니 빼빼로데이니 이런 소비지상주의 가득한 날까지. 온갖가지 ‘날’들이 판을 치는데 어지간하면 명함하나 내밀기도 힘들고 혹 들어는 봤어도 지나고 나면 언제인지 금방 까먹을 ‘날’들.

하지만 아주 일상적인 것도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 오래가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30년을 모르고 살아왔던, 하지만 앞으로 절대 잊을 것 같지 않은 ‘경찰의 날’처럼 말이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10월21일이 무슨 날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더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매년 10월21일에는 경찰업계에 종사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끼리 자축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10월21일 ‘경찰의 날’ 아침에 들려온 소식은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특별히 지독한 기억이 남는 날로 바꿔버렸다.

▲ 21일 오후 기륭전자 앞에서 경찰이 경찰특공대를 투입,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이상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강제로 끌어 내렸다. 그 후 '골리앗'이 용역직원들에 의해 철거되었다ⓒ참세상

   
 

▲ ⓒ참세상

 

2008년 10월 21일 오전 10시30분. 나는 서대문역 근처의 경찰청 앞에 있었다. 전날(20일) 오랜기간 회사측과 싸워오고 있는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 구사대와 용역들이 투입되어서 폭력을 휘두르는데 경찰이 수수방관하고, 오히려 불법연행한 사람들을 용역들에게 넘겨서 집단폭행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경찰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20일 기륭 농성장의 상황은 참담했다. 아무리 빠른 시간 안에 급하게 쓴 기자회견문이라고 해도, 그 당시의 처참한, 지옥과도 같은 아비규환이 문자를 타고 내 몸에 흘러들어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부상자의 눈 위 상처가 유난히도 붉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 사실은 새롭지도 않은 내용이다. 언제 경찰이 한 번이라도 없는 사람 편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경찰이 용역들과 조직폭력배들과 서로 돕고 돕는 사이라는 거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달동네 강제 철거할 때, 깡패들이 주민들 죽도록 패는 거 경찰들이 벽을 싸서 다른 사람들 못보게 도와주는 거 한 두 번 겪어 본 것도 아니니 그따위의 경찰 행동에 서운할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꾸역 꾸역 치밀어 오는 높은 파동의 감정이 있었다. 마치 너무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고 또 봐도, 다음 장면 다 알아도 언제나 재미있는 것처럼, 백번도 더 넘게 느꼈을 분노.

‘경찰의 날’이 어떤 날인지 찾아봤다. 세상에 잔칫날은 거지가 와도 박대하지 않는 법인데, 지네 잔치 전날 용역들 수발이나 들고 있고 힘없는 노동자들 쥐어 패고 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올해가 63주년이라고 한다. 올해가 건국 60주년인데, 그럼 대한민국 경찰은 대한민국보다도 더 먼저 생겼다는 말인가? 국가보다 먼저 생긴 경찰이라니, 넌센스다.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미군정 산하 경무국에 모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 미국이 좌익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국가행정조직에 몸담고 있던 친일파들을 그대로 이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친일파 중에서도 가장 악질들이 모여 있던 곳이 바로 경찰이었으니, 예전에 독립투사들 잡아들이는 실력으로 민주화운동 인사들 잡아들이고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지금까지 잡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연좌제는 나쁜 것인데, 지금의 경찰이 친일경찰의 모태를 두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친일했던 선배들의 과거를 뉘우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선배들에게 뒤질까봐 더욱 악랄해지는 것이다. 독립투사 때리던 몽둥이가 민주화운동하는 사람들 잡고, 조직폭력배들과 술잔 나누던 손으로 박종철을 죽이고 강경대를 죽이고, 농사짓다가 고향땅에 묻혀야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을 여의도 시꺼먼 아스팔트 위 귀신으로 만들어 버리고, 또 많은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리고도 한 번 그 흔해빠진 형식적인 반성조차 하지 않는 조직이 경찰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은 경찰력을 통한 치안의 확보와 사법권을 통한 처벌의 작동을 핵심으로 하였다. 그래서 근대국가 초기, 경찰은 ‘우리 모두의 안정을 위한 담보자’ 혹은 ‘공익의 화신’으로 상징되었고, 외경(畏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인해 두려움의 대상이었을지언정 외경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일말의 존경심도 거기에는 포함될 수 없었다.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경찰을 멋지게 조롱하는 방법까지 찾아낸 사람들에게 경찰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도 못 될 것이다. 하기사 회사에서 고용한 용역들 뒤치다꺼리하는 경찰조직을 두려워하기는 이쪽 편에서도 쫌 쪽팔릴 일이고, 스스로도 낯 부끄러울 일이다.(그 정도의 염치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애시당초 경찰이라는 조직에 일말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경찰의 본질은 국가권력을 위해 합법적으로 폭력을 보유한 집단이 아닌가. 국가권력의 이익이 언제나 개인의 삶과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면, 경찰의 몽둥이는 언젠가 나를 향해 날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최소한의 룰은 좀 지켰으면 싶기도 한다. 법 또한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만, 그마저도 안지키면 정말이지 대책이 안서니까.

대신에 경찰에서 근무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냐고. 돈벌이 힘든 사회고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거 알지만 정말 그러고 싶냐고. 대체 얼마나 잘 벌어서 잘 살기 위해서 꼭 그래야만 하냐고. 힘없는 노동자들 때리던 손으로, 그래서 폭력에 찌들어 있는 그 손으로 집에 가서 당신들 자식 손잡을 거냐고. 항의하는 인권활동가들에게 욕설 퍼붓던 입으로, 그래서 짜증이 아로새겨진 그 입으로 애인을 만나서 사랑을 속삭이고 싶냐고.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당신이 용역깡패들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심정일지 생각해봤냐고. 우리 인간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괴물만은 되지 말아야하는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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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건군 60주년 군사퍼레이드를 반대한다 
이용석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webmaster@mediaus.co.kr 
 
 
서울시내 한복판 테헤란로에 탱크가 나타났다. 탱크뿐만 아니라 장갑차와 미사일과 군인들이 득시글거린다. 북한군이 아니다. 합법적인(?) 군대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자위대도 아니다. 평택주민들 다 쫓아내고 이사 간 미군도 아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상황은 실제상황이다. 서울시내 한복판에 탱크와 장갑차를 끌고 행진하는 것은 바로 한국군이다. 전쟁이 일어났냐고? 천만의 말씀. 사람들의 삶은 고되지만, 전쟁은 먼나라 이야기인 이곳은 한국땅이다. 건군 60주년을 자랑하는 국방부의 국군의 날 맞이 군사퍼레이드가 그 주인공이다.

공휴일이 아닌 국군의 날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지만, 5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군사퍼레이드는 아직 국군의 날 행사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군은 미군정기 필요에 따라 신설되었던 기관에 각각의 연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서로 기념일을 다르게 정했지만, 1956년 국무회의를 통해 10월 1일(1950년 10월 1일, 한국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 육군 제3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날이다)을 국군의 날로 지정하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건국 60주년을 맞이하여 ‘건군 제60주년 기념사업단(단장 김진훈 중장)’을 따로 만들어 "선진강군 국민과 함께 미래로, 세계로"라는 기치로 잠실종합운동장과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다. 성시경, 김종민, 공유, 하하, 양동근 등 연예인 사병들까지 총출동시켜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받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뭐니뭐니해도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역삼역까지 약 3km를 행진하는 5년 만에 돌아온 군사퍼레이드가 아닐까 싶다. 국방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계획을 보면 ‘K1A1 전차와 K-532 장갑차, K-9 자주포 등 우리 군의 첨단 무기 20여 종 80여 대가 선을 보일 예정이며, 아직 실전배치 되지 않은 한국형 차기 전차(일명 흑표)와 장갑차(K21) 등 최신 무기가 일반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테헤란로를 가득 채운 거대한 대량살상무기들은 과연 우리의 삶을 평화롭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평화를 위해 무기를 사들이고 개발하는 노력을 다른 부분으로 돌린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 K-9 자주포 ⓒ국방과학연구소

이번 퍼레이드의 주인공 중 하나인 한국이 자랑하는 K-9자주포를 보자. K-9자주포는 기존의 K-55자주포를 개선해 한국이 독자 개발한 자주포로서 삼성테크원이 생산을 한다. 최근 제2의 대추리로 주목을 받고 있는 무건리의 주민들은 K-9자주포 때문에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국방부가 “K-9 자주포의 사격훈련을 위해서 직경 10km 이상 되는 훈련장이 필요하다”며 파주 무건리 훈련장 확장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적에 대한 공포심을 볼모로 현실의 누군가의 구체적인 삶을 위협한다. 또한 국방부는 지난 2001년 터키에 10억 달러 규모의 K-9자주포를 수출했다. 국익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일 수 있겠지만, 팔고 나면 그 무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터키는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니는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어디에선가 쿠르드인을 겨냥하고 있을 K-9자주포를 테헤란로에서 보면서 마냥 뿌듯해해도 되는 것일까?  
 

▲ K-2 전차 ⓒ국방과학연구소

또 하나 한국의 자랑 K-2전차(일명 흑표전차)는 어떠한가. 아직 실전배치가 되지 않은, 이번 퍼레이드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인 K-2전차는 2003년부터 정식 개발되어 2011년부터 개시될 예정으로, 현대 로템에서 개발하였다. 이미 기존의 전차로도 북한군의 전력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혈세낭비라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실제로 국방개혁2020에 따르면 총 680대를 도입할 예정이며 개발비 2000억원을 포함하여 총 예산 5조 6440억원이 들어가는 막대한 사업이다. 이 돈이면 기초생활수급자 140만명에게 매달 30만원씩을 1년 동안 지급할 수 있다. 필요이상의 소비로 흑표전차를 개발하는 것과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 어떤 것이 우리 사회를 평화롭게 하는 일인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또한 현대 로템은 2007년 4억달러를 받고 터키에 기술이전 방식으로 수출을 했다. 야산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에 맞게 설계되어있기 때문에 한국과 지형이 비슷한 터키에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K-2전차를 쿠르드인 탄압에 투입하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수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퍼레이드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무기들을 다 언급할 수는 없다. 평균적으로 정부예산의 15%를 차지하며, 해마다 6~11%까지 치솟아 2007년에는 무려 24조에 다다른 국방비(그 중 약 37% 정도가 무기획득에 관련된 비용)가 다른 부분에서 사용된다면 어떨까. ‘무기를 통한 평화’를 위한 인적·재정적 노력을 사회복지, 교육, 의료, 문화 등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할 수 있는 부분으로 조금만 돌린다면 우리의 삶은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평화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구체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중한 무기들은 오히려 현실에선 전쟁을 대변하고 평화를 상상과 미래의 영역으로 넘겨버리지만, 평화를 위한 다양한 상상력은 현실에서 다양한 층위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와 공공도서관과 돈 없어도 다닐 수 있는 학교, 아프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다. 이런 것들은 심지어 무기에 들어가는 노력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무기가 우리의 평화를 지켜준다는 신화를 넘어서기 위하여, 무기로 돈을 벌어야 하는 야만의 자본주의와 국익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위하여,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살상무기들의 화려한 행진을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고추잠자리의 꼬리에서 단풍의 잎사귀로 계절의 흔적이 옮겨지는 가을,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해야 할 눈부시게 푸르른 날, 어쩌다가 그 가을의 한가운데 국군의 날이 위치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을 죽이고 지구를 파괴하는 능력밖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인간이 만든 가장 최악의 발명품. 누구를 위하여 무기는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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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좌편향 시비하며 우편향 모는 건 ‘반역사’ 
이용석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webmaster@mediaus.co.kr 
 
 
이번엔 역사교과서다. 10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저들이 KBS와 YTN에 낙하산을 타고 착륙해서 <PD수첩>을 짓밟으며 얍삽한 눈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다 다음 먹잇감을 찾은 것이다. 불온서적 리스트로 일찍이 시대착오 개그의 최고봉으로 올라선 국방부가 나섰고, 그 이름도 거추장한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 교과서포럼이 합작하며, 한나라당이 뒤를 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참, 공정택을 비롯한 전국의 교육감 나리들도 빼먹으면 서운해 할 것이다. 교육감 나리들은 일선 학교들에서 좌편향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제 세상 만난 것처럼 서로 안달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아이들의 머릿속까지 똥칠을 하려고 설치는 형국이다.

▲ 22일치 조선일보 3면.


 저들의 주장은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경우 지난 6월 교육기술과학부에 공문을 보내 제주4.3사건과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대한 평가를 문제삼아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복무제도도 뒤집고 불온서적 리스트도 작성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무래도 전문지식과 상식이 달리는 역사교과서까지 참견을 하시다 보니, 솔직히 반박하거나 비판할 만한 내용조차도 부족한 이야기들을 야심차게 발표한 것이다. “공산당 조직이 배후에 있고 경찰 발포는 군중 투석에 따라 시작됐는데, 발포 사실만을 지적해 사건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국방부의 주장을 보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도 문제지만 국방부가 가지고 있는 시각에 덜컥 겁이 난다. 공산당이 배후이고 투석을 한 사람들은 무조건 쏴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다니.

교과서포럼의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특히 일제시대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후 인식)을 극복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후 재인식)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내심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1980년대라는 시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식>은 사실 그 대단한 의미와 가치만큼이나 한계 또한 명확했고, 1980년대라는 시공간을 벗어난 지금에는 어쩌면 굉장히 낡은 인식의 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인식>이 보는 세계는 <인식>의 세계보다 더욱 뒤떨어져 있었다. <인식>이 가지고 있는 한계-‘민족’과 ‘민중’의 과잉 대신 택한 것이 ‘국가’였던 것이다. 근대가 낳은 거대한 괴물 ‘근대국민국가’를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재인식>의 시선이었다. 교과서포럼의 주장은 <재인식>의 되풀이 주장이다.(<재인식>의 편집자 이영훈 교수가 교과서포럼의 상임대표다.) 민족적인 감정만을 앞세워 일본을 무조건적으로 적대시하는 것은 분명 큰 문제이지만 그것의 극복은 식민지배의 인정이 아니라, 근대라는 틀거리에서 ‘식민지’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근대라는 역사적 시기의 생성물임을 파악하면서 ‘근대’ 자체를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한나라당에서는 나경원 의원(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교과서포럼 관계자들을 만나서 교과서가 이념편향적 기술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구체적으로 검토해서 교육과학기술부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뒤가 구린 것은 아는지 당이 교과서 수정안을 직접 내지는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역사교과서가 과연 그렇게 좌편향일까? 대답은 아주 단호하게 “아니오”다. 물론 북한사람은 다 뿔난 돼지로만 알고 있던 시절의 교과서를 그리워 한다면 지금의 교과서는 지나치게 좌편향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경우 6차 교육과정까지는 국사(상)(하)로 구성되었던 것이 7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근현대사가 선택과목으로 분리되어 전체적으로 분량이 풍부해졌다.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면 북한의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이 틀림없다. 뉴라이트계열이 좋아하는 역사인식의 방식인 실증주의로 보자면 오히려 우편향에 가까울 것이다. 좌익계열의 독립운동이 그나마 소개는 되고 있지만 여전히 김일성이나 박헌영 등 민감한 부분은 비중이 아주 작거나 이야기되지 않기 때문이다.

▲ 교과서포럼 홈페이지.


사실 저들이 좌편향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신들보다 왼편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위치가 얼마나 오른쪽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몰상식한 인식이다. 버클리대학의 스칼라피노 교수와 펜실베니아대학의 이정식 교수가 쓴 <한국의 공산주의>(한국에서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라는 책도 한국에서는 금지도서의 목록에 이름을 올린 반면, 미국에서는 지나치게 우편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역사는 결국 사관의 해석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역사에서 이념성을 따질 때, 철저히 자신의 이념을 잣대로 평가를 하는 것은 역사학에 대한 모독이다. 혹은 가장 악질스런 정치적인 공작이다.

교과서가 이념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는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다. 교과서는 근대교육의 생성물이다. 노동과 삶을 통해 후대로 이어지던 예전의 교육이 근대에 들어서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과서를 매개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한계 또한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교과서를 특정 정치 세력이 전유하려는 시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근대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국가의 입장에서는 말 잘듣고 애국심 강한 ‘국민’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지만, 사실은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들에 대해서 스스로 비판하고 판단하고 생각하고 몸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교과서를 좌편향(실상은 좌편향도 아니지만)이라고 비판하면서 우편향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그래서 반교육적이다.

역사교과서의 이야기를 하자면, 개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의 시각과 인식 또한 과거 <인식>이 가졌던 지나친 ‘민중중심’과 ‘민족중심’의 역사관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를 강조하고 자본주의를 찬미하는 <재인식>의 역사관은 아니다. ‘근대’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역사해석이 필요하다. ‘근대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고취시켜 줄 수 있는 역사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한 이분법으로 좌익과 우익을 가르고 상대편에 대한 증오만을 키워가며 자신의 이데올로기만을 주입시키려고 하는 이 몰지각한 모리배들에 누군가 굳이 비판 글을 쓰지 않아도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혹시나 저들의 반동적인 교과서 뒤집기가 성공이라도 한다면 우리 모두 키팅 선생님(죽은 시인의 사회의 선생님)의 외침과 함께 교과서를 찟어버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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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고장난 라디오] 대체복무제, 언제까지 ‘의견 수렴’만 
이용석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webmaster@mediaus.co.kr 
 
 
혹자는 10년 전으로 세상이 돌아갔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2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세상은 10년이고 20년이고 뒤로 갔는데 어째서 내 먹은 나이만은 앞으로 가냐고, 주름살 없어지기는커녕 더 많아지는 일만 생기냐고 푸념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세상이 뒤로 돌아가다보니 예전에 했던 경험들을 또다시 겪게 된다. 그 당시에 들었어도 재미없었던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도 두 번째는 덜 재미있고 갈수록 흥미가 떨어진다. 하물며 저들의 뻔뻔한 말장난을 계속 듣는 일이란. 그러니 주름살 늘어갈 수밖에 없다. 누구는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온 국토에 삽질해대고 있고, 누구는 20년 전으로 돌아가서 빨갱이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정도니 어지간한 사연으로는 말하기 창피해서 그냥 혼자서 꾹 참고 견뎌야할 판이다. 하지만 바로 어제 한 말들이 허공으로 증발해버리고 밖에 나가서는 증발해버린 말들을 지껄이며 여전히도 자랑질하는 것들을 보면, 이 재미없는 재방송을 참아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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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없는 세상

 
국방부의 이 저질스런 개그 덕분에 국방부 아닌 곳에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벌써 6년 전, 중학교 1학년 다니는 옆집 아이가 막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지금은 대법관인 박시환 당시 남부지법 판사에 의해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제청이 있었다. 그리고 6년 후,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남부지법 판사가 대법관이 될 정도의 세월이 지났지만 입법부는 지리멸렬하고 국방부는 뻔뻔할 뿐이다. 얼마나 보기 답답했으면 또 다시 사법부에서 6년 전 레퍼토리를 또 다시 들고 나와야 했을까. 아마 이번에 위헌법률제청을 신청한 정성태 판사(춘천지법)도 자신의 처지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건 리메이크도 아니고 예전에 박시환 판사가 했던 이야기를, 그리고 2004년 대법원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될 당시 소수의견을 냈던 이강국 대법관(현재는 헌법재판소 소장)이 이야기했던 내용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해야만 하는 심정은 어땠을까? 개그센스는 기본으로 요구되는 시대에 재미없는 개그에 장단을 맞춰서 고장난 음반처럼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해야 하는 사태를 어찌하란 말인가.

헌법10조에 의거하여 병역거부자에게 다른 기회를 주기 위한 어떠한 입법의 노력도 하지 않고 집총을 강요하여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가가 소수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도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다수자(강자)의 가치에 의하여 소수자(약자)의 존엄과 가치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해석과, 헌법 37조 2항의 기본권 제한에 있어서도 대안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없었고 혹 제한하더라도 “그 목적에 비례하는 범위 내의 제한에 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는 기본권 제한의 원리를 일탈한 과잉조치라는 해석은 6년 전 사법고시 준비생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창작자가 될 수 없는 이 끔찍한 상황-모든 상상력에게 안녕을 고해야하는 것인가-을 초래한 것은 누가 뭐래도 국방부다.

국방부의 고장난 레퍼토리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허무함을 유발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정치적인 성향상(실제 병역거부 연대회의는 대통령 선거 시절 이명박 캠프에 대체복무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청했는데 이명박 캠프에서는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주셔서 결사반대의 뜻을 알려왔다.) 대체복무제도가 흐지부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처럼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작년 9월 국방부가 발표한 병역거부자를 위한 사회복무제도가 채 1년도 안돼서 호떡보다 더 쉽게 뒤집어져버린 것이다.

병역거부가 사회의 이슈가 된 이후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고 병역거부자들의 병역거부 이유도 아주 다양해졌지만 국방부의 반대 이유는 아직도 그대로다.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의 핑계를 대는 것이 그것인데, 과연 이 정부와 국방부가 국민적 여론에 관심이나 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국방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작년 9월 발표는 국민적인 여론을 무시한 채 내린 결정이었나? 혹 백번 양보해서 국민여론의 수렴과정이 필요하다면 작년 9월 이후 지금까지 두 손 두 발 놓고 국방부는 뭐하면서 세금으로 월급 받아먹은 것인가? 물론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은근슬쩍 스리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수렴해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핑계를 대려면 좀 더 영리해져야 한다. 사람들이 전부 국방부 수준의 단선적인 사고구조를 가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국방부, 이제 그만 하자. 사법부도 6년 전 이야기를 꺼내며 민망했을 것이다. 병역거부자들인들 똑같은 이야기를 몇 년 째 하는 것이 지겹지 아니할까? 솔직히 말해서 대체복무제도는 평화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제도도 아니지 않은가. 더 세게 이야기하고 싶은 평화주의자들이 현실과의 타협으로 제시한 것이 대체복무제도이다. 사람들도 쉽게 납득할 수 있고 국방부에서도 거부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렇기 때문에 대체복무제도는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몇 십 년씩 큰 문제없이 잘 운용되는 것이다. 하기야 지금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한들 새로운 것이 있겠냐만은 그래도 했던 이야기 또 하는 건 더 이상 이야기 안 하기 위해서이다. 국방부처럼 천년만년 같은 이야기만 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말이다.

국방부의 상상력이 빈곤해서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없다면 걱정마시라. 병역거부자들과 평화주의자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개그의 시대에 지겹고 납득할 수 없는 개그를 반복하는 역적이 될 것인가, 새로운 개그시대를 열어가는 데 일조할 것인가? 너무 머리 아픈 결정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노래 한 곡 들으면서 마음과 머리를 식히는 것이 어떨까. 작년 홍대 인디씬의 최고의 히트곡이라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를 추천한다. 가사를 음미해서 들어보길 바란다.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애써 찾아가지 않았던 평화가 나에게로 왔다. 평화의 결과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현재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착하게 살다가 조용히 죽는 삶을 꿈꾸지만 버리지 못한 욕심이 심장에 붙어있어 떨쳐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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